내가 싫어하는 것 중, 손꼽는 것이 있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와 바이킹 같은 놀이기구를 타는 것.
일단 어지럽고 토가 나와서 즐길 수가 없다. 즐겁기는커녕 고통스럽다. 뱅글뱅글 도는 놀이기구에 앉아 있으면 일단 눈을 감게 된다. 몸이 360도로 비틀리고 뒤집히니 멀미를 안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멀미를 하면서도 이런 의문이 든다.
***여기 시설을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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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위험 투성이다. 길 가다 철거 중인 건물에 깔려 죽는 사람도 있고, 캠핑 중 화재로 죽기도 한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지하철에 치어 죽기도 하고, 내리막에 브레이크가 풀린 지게차에 다리가 절단되기도 한다.
이런 예는 신문 사회면을 5분만 훑어보면 수도 없이 많다.
인지하는 범위에서 조심하려고는 하지만, 마치 운명처럼 위험이 다가와 죽거나 크게 다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하물며 내 돈을 내고 일부러 시간을 들여, 위험할 수도 있는 기구에 몸을 맡긴다는 게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간다. 어릴 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을 때, 호기심에 타본 후로 기회가 될 때도 절대 타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3D 고글을 쓰고 편안한 소파에 앉아 VR로 롤러코스터 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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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속이는 행위.
몸은 가만있는 상태에서 진정한 ‘스릴’을 느끼는 것은 가능할까…
이 경우는 ‘롤러코스터’를 즐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확하게는 ‘롤러코스터 VR’을 즐긴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긴 하다.
흔히 무엇 무엇을 해봤다고 하는 ’ 경험‘이란, 몸으로 해본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뇌 속의 기억을 뜻하는 것일까… 몸으로 꼭 해본 것만을 경험이라 한다면 VR로 놀이기구를 체험해 본 사람은 놀이기구를 타봤다고 할 수 있을까? 이때는 엄밀하게 놀이기구에 대한 경험은 없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뇌가 겪은 ‘기억’을 경험이라 한다면 VR을 통한 ‘체험’도 ‘해봤다 ‘고 할 수 있겠다.
코로나가 있기 전, 3D VR 게임장을 간 적이 있다.
나는 평소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산속의 흔들 다리나 빌딩 전망대에 있는 투명한 바닥 위도 가지 못한다.
게임 중에 건물 옥상에 서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외계의 적들을 향해 총을 쏘는 게임이 있어서 해봤다. 어차피 가짜인데 고소공포증을 테스트해보고 싶은 마음에 고글을 쓰고 게임을 시작했는데… 30초도 못 버티고 고글을 벗어버렸다. 이성적으로는 가상현실임을 알고 있지만 무의식의 뇌와 나의 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식은땀이 나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등 두려움이 생겼다.
하늘을 나는 자전거 게임도 쉽지 않았지만 자전거라는 물체에 의존하는 방식이어서 공포감이 덜했다.
이런 게임들은 나의 뇌를 잘 속이고 있었다. 머리와 몸이 기억하는 ‘고소공포’의 느낌과 강도에 준하는 가짜 환경을 만들어 내서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나처럼 실제 놀이기구도 못 타고 가상의 놀이기구도 못 탄다면
결과적으로 몸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간접 체험도 같은 급으로 간주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가상의 체험도 실제 경험한 것과 같은 수준의 기억과 감정을 갖게 해 주니 말이다.
경험이든 간접 체험이든 인간에게 ‘해봤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사람은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상상만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발견해 낼 수 없다.
상상이라는 것도 경험이 있어야 가능하다.
뉴턴은 사과나무가 보이는 야외에서 사색을 하다 만유인력이라는 것을 발견해 냈고,
아르키메데스는 목욕을 하다가 부력을 알아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우연이 아니다. 산책과 목욕에 대한 경험을 통해 연결 지어 생각해 낸 것이다. 매 순간 그 이슈에 대해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상이 된 것이다.
사과가 떨어지고 목욕탕의 물이 넘쳐나는 당연한 현상에서 본인들이 연구하는 분야와의 연관성을 떠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치열하게 연구했을지 경의를 표하게 된다.
사람의 뇌는 훈련하고 발달할수록 연관 짓는 기능이 강화되는 것 같다. 연상을 할 때 기억력은 몇 배나 더 강력해지고 창의성도 크게 발휘된다.
학교 다닐 때 과목별로 연상 암기법 하나씩은 활용해서 외웠던 기억이 있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영어 문법시간에 선생님이 비명처럼 소리 지르던 ‘**일 지라도’, 화학기호를 외울 때도 기호의 앞 이니셜을 붙여서 문장을 만들어 이름을 외웠던 기억도 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식의 방법을 썼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외우기 힘든 것들 위주로 그런 방법을 썼던 것 같다. 한국어와 어순이며 문법이 전혀 다른 영어 같은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일단 외우는 것이 중요했을 텐데, 기억을 남기기 위한 선생님의 필사적인 노력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연관 짓는 스킬을 키우기 위해서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을 한다면 뇌가 연관 지을 수 있는 기본 데이터들이 많아진다.
어릴 적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구름다리를 팔로 건너는 운동을 한적 있는데 떨어질까 두려웠던 나는 한 칸, 두 칸 이상을 가지 못했다. 팔의 힘이 없다기보다는 무서웠다. 그 구름다리를 건너기 위해 내가 했던 방법은 매일 운동장에 나가서 해보는 것이었다. 동기는 분명했다. 체육시간에 다들 보는 앞에서 창피를 당하기 싫었다. 나만 못한다는 손가락질받는 게 싫었다. 아무튼 나는 며칠을 가서 혼자 연습한 덕분에 방법을 터득했고 건널 수 있었다. 어리지만 나름 성공의 경험을 한 것이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체육시간에 축구를 많이 했는데, 축구를 하며 제일 싫은 것이 헤딩이었다. 헤딩을 하려고 하다 거리조절을 못해서 얼굴에 맞거나 귀에 맞을 때가 많았고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피하게 되고, 안 하다 보니 더 못하게 됐다. 헤딩을 안 하면서도 축구를 잘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이런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부딪혀서 두려움을 이겨내거나, 발로 더 많이 뛰어다니거나, 골키퍼 같이 헤딩을 하지 않는 포지션을 맡는 것도 방법이었다. (처음엔 뛰는 게 좋아서 더 많이 뛰는 방법을 택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포지션을 바꾸는 방법을 택했던 것 같다)
어쨌든 경험은 감정과 사연을 만들어내고 방법을 찾아낸다.
경험적으로 헤딩이 어렵고 싫다는 것을 느꼈고 이것을 극복,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게 됐다. 그리고 고민의 결과로 나름 해결책을 찾았다. 이런 과정에서 뇌는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된다.
앞에서 연관성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해결의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연관성의 개념은 큰 역할을 한다.
뇌가 생각하는 과정에서 제일 먼저 기본 소스로 활용하는 것은 경험이기 때문이다. 1차적으로 과거에 겪었던 일들을 꺼내서 분석한다. 그리고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은 유의미한 데이터가 있는지를 찾는다. 작은 연관성이라도 찾는 것이다.
헤딩이 어려우니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뇌는 과거 비슷한 경우를 찾아봤을 것이다.
구름다리를 건너기 위해 했던 나의 노력들과 성공에 대한 경험이 헤딩을 극복하는 해결책을 찾는데 레퍼런스가 됐을 것이다. 방법을 찾을 때까지 시도해 보고 대안을 찾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뇌가 기억하는 그 방식이 이번에도 활용됐다. 나는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일단 몇 번의 시도를 해보고 안되면 다른 대안을 찾는 식으로 훈련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될 때까지 한 가지 방법을 찾는 이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애초에 도전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무수한 이전의 경험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 것이다.
학습은 경험이다.
가끔 소파에 앉아서 구운 양파링과 맥주를 마시며 핸드폰이나 태블릿으로 영상을 본다.
강호동이 섬이며 오지를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먹어 보고 장난치는 모습을 본다.
또 장동건이 해외의 유명한 서점을 돌며 여행하는 영상도 본다.
윤택이 산속을 찾아가 ‘자연인’을 만나는 것도 본다.
나를 대신해 돌아다니고 체험을 해보는 이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고 있는 ‘나’.
그들이 경험한 것을 편안한 자세로 아무 고생도 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사실 직접 체험한 그들보다 더 정확한 정보와 객관적인 모습을 보고 있다. 지역에 대한 자세한 부연설명이 자막으로 나오고 도시 전체를 찍은 드론부감 샷도 있다. 또 지역정보에서 부족한 부분은 따로 전문가의 인터뷰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직접 현지를 방문해서 체험한 강호동이나 장동건, 윤택과 ‘나’ 중 누가 더 경험을 잘한 것일까…
TV로 경험하는 방식과 가상현실로 경험하는 방식에서 기술적 수준 차이가 있으니 절대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여행에 있어서는 간접체험으로 느낄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놀이기구와 같이 극단적이고 단순한 자극은 뇌를 속이기 쉬운데 반해,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너무나 복합적이고 상황의 변수가 많아 예상해서 간접 체험할 수가 없다.
여행 중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흠뻑 젖어 허탈하지만 시원했던 기억. 내 주머니에 손을 넣었던 소매치기와 눈이 마주쳤던 기억. 현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과일과 와인들. 사람들과 우연히 만나 대화를 하고 도움을 받았던 기억. 이런 것들을 어떻게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을지 나는 모르겠다.
어디까지를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지 기준이 혼란스럽다.
무조건 내 발, 내 손으로 해보고 내 눈으로 본 것이 경험이라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고,
간접적인 체험도 훌륭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아마도 전자에 가까운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직접 해보고 느낀 것이 나의 진짜 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무엇을 경험의 범위에 넣더라도 강렬한 감정과 기억이 남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가상체험을 통한 신기함이 아니라, 바이킹을 타고나서 토했을 때 느끼는 강렬함. 롤러코스터에서 거꾸로 매달려 있을 때의 공포감. 여행지에 떨어트려진 내가 겪는 새로운 경험들…
이런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기엔 아직도 한계가 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