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본다.
가끔 지금처럼 아이패드로 글을 쓰지만 많은 시간 스마트폰을 통해 유튜브를 보거나 기사를 검색하고
음악을 듣고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
카지노에서 차무식이 위기에 빠졌을 때, 더 글로리에서 박연진이 전재준의 아이를 키울 때.
이야기에 너무 깊이 몰입이 된다.
그런데 참 재밌는 게, 그렇게 몰입하고 집중해서 이야기에 빠져있다가도 환승을 해야 하거나 내려야 할 때가 되면 알아차리고는 자연스럽게 지하철을 빠져나간다.
그렇게 환승을 하려고 걸어가는 찰나에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어디를 가고 있었더라?’
삶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아니다. 그저 단순 목적지에 대한 ‘생활형 질문’이다.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 몸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데 정작 머릿속에서는 내가 어디를 가고 있는지 순간 잊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목적지로 잘 향해 가고 있는 걸 보면 신기하다.
한 20초 정도 생각을 하고는 출근길이라는 걸 기억해 냈다.
목적지가 순간 기억나지 않던 그 출근길의 기억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 나이에도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내가 가는 길을 잊을 수도 있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랄까…
그렇게라도 현실을 잠시 잊는 게 가능하다는 생각에 들뜨기까지 했다.
내 나이쯤 되면 인생이 거의 다 맞춘 퍼즐판이 된다.
마트에서 파는 5,000 피스, 10,000 피스짜리 퍼즐이 있다. 처음 맞추겠다 맘먹고 바닥에 쏟아놓은 후 하나하나 조각을 찾아 끼워 맞추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맞추게 된다. 그러다 한몇백 피스쯤 남았을 때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라는 현타시간이 온다. 이미 맞춰놓은 게 있어서 마무리는 해야 한다. 되돌릴 수는 없다.
40대 후반 정도 되면 가정과 직장은 세팅이 됐을 시기다. 배우자와 자녀가 있을 거고 만약 없다면 앞으로도 없을 확률이 크다. 재산에도 큰 변화는 생기지 않는다. 크게 늘어나지도 크게 줄어들지도 않는 시기다.
사회생활에서도 아직 쫓아낼 나이까지는 아니어서 후배들에게 존중받고 일을 가장 잘할 시기이기도 하다.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가진 게 많을 시기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현실이 너무 조용하고 별 일이 없어서 심심할 시기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대체로 세팅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인생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바람을 피기도 하고
주식이나 코인, 도박으로 가진 걸 날리기도 한다.
또 새로운 취미를 찾아 도전하기도 하는데, 몸이 안 따라주니 대체로 골프를 치는 것 같다.
골프는 운동도 아니면서 운동한다는 명분으로 놀러 다닐 수 있으니 좋은 구실이 된다.
인생은 긴 여정이라는 표현이 있다.
중간에 영화나 드라마에 정신이 팔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순간 잊었어도 여정은 계속된다.
누군가는 퍼즐판을 뒤집어엎고 새로운 퍼즐을 맞추고 싶다 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맞춰놓은 퍼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번 시작된 여정은 끝을 볼 때까지 계속된다.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더라도 인생은 끝을 향해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