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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로 이사 갈까 고민하게 만든 맛집 (가평 태양식당)

태양식당에서의 따뜻한 한 끼

by 무어 Feb 17. 2025

겨울이었다.

눈이 많이 내린 다음 날, 햇볕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문득 춘천에 있는 한 카페가 떠올랐다.  ‘소울로스터리’라는 곳인데, 가을에 방문했을 때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난다. 넓은 소나무숲 사이에 테이블이 놓여 있고, 향긋한 라테와 따뜻한 차를 마셨던 순간이 선명했다. ‘눈 덮인 소나무숲에서 마시는 차의 맛은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설렜다.


늦은 아침을 먹고, 우리는 집을 나섰다. 전기차는 80% 정도 충전된 상태였다. 고속도로보다는 국도를 따라 춘천으로 가는 길이 더 운치 있어 보였다. 청평을 지나 가평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춘천으로 가기 전, 화장실도 들르고 점심을 먹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근처를 검색해 보았다. 마침 ‘1939시네마’라는 곳이 적당해 보였다. 깨끗한 화장실과 전기차 충전기도 갖추고 있어 일석이조였다.


충전기를 연결하고 극장 안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온 후, 점심을 먹을 식당을 찾아봤다. 근처에 평점이 좋은 몇 군데가 있었는데, 가장 가까운 곳이 ‘태양식당’이었다.


‘추운 겨울, 호호 불어가며 먹는 찌개가 딱이지.’

기대감을 안고 식당으로 향했다. 농협을 지나, ‘태양식당’이라는 간판이 보이는 곳으로 들어섰다. 유리로 된 창고 같은 공간에 테이블과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다. 기온은 낮았지만, 햇볕이 드는 덕분에 온실처럼 포근했다. 그런데 잠시 후 직원이 다가와 “이곳은 추우니 옆 본관으로 들어가세요.”라고 안내했다.

점심시간이 지나 한산한 식당 내부는 마치 80년대 가정집 같은 정겨운 분위기였다. 주인의 안내에 따라 방으로 들어가니, 네댓 개의 테이블 중 한 팀이 식사 중이었다. 구석에 자리를 잡자, 직원이 기본 반찬을 내오며 말했다.


“여기는 소머리국밥과 설렁탕이 맛있어요.”


하지만 나는 기름이 둥둥 뜬 국물을 잘 먹지 않는다. 소화가 잘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청국장을 주문하기로 했다. 찌개류 메뉴는 기본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하다고 했다.

가격을 보고 한 번 놀랐다. 2인분이 겨우 16,000원. 요즘 가평의 카페에서 커피만 마셔도 그 정도 가격은 각오해야 한다. 기대 반, 의심 반.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반찬부터 맛보았다.

계란말이는 각이 제대로 잡혀 있었고, 간이 딱 맞았다. 김은 직접 구운 듯 바삭하고 두께감이 있었다. 버섯·호박볶음과 마늘종볶음도 신선한 재료로 정성껏 조리한 느낌이 들었다. 김치는 1년 정도 숙성된 듯, 겉절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푹 익은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도 만족할 만한 맛이었다.


흰쌀밥은 갓 지은 듯 고슬고슬했고, 군내가 전혀 나지 않았다. 본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리는 반찬들이었다.

잠시 후, 청국장 2인분이 나왔다. 일반적인 된장찌개보다 맑고 개운한 국물 스타일이었다. 간혹 너무 되직하고 짜게 끓이는 집이 있는데, 이곳 청국장은 달랐다. 국물은 맑지만 깊은 맛이 우러나 있었다. 기름기 없는 청국장 국물 속에 두부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으니, 순두부처럼 부드럽고 신선한 맛이 느껴졌다.

이곳은 단연 맛집이었다.

청국장 특유의 강한 냄새는 거의 없으면서도, 감칠맛은 진하게 살아 있었다. 국물과 밥을 번갈아 먹으며, 반찬도 정신없이 집어 먹었다. 대부분의 반찬은 리필이 가능했지만, 계란말이는 정해진 양이 있어서 추가 제공이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식사 마감 시간이 되면 남은 걸 넉넉히 드릴 수 있어요.”라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김, 호박볶음, 김치를 다시 리필했다. 청국장은 먹을수록 더 깊은 맛이 났다. 뚝배기가 열을 유지해 국물의 풍미가 점점 우러나는 느낌이었다.

넓은 식탁 위에는 기본 반찬 7가지와 청국장 뚝배기, 공깃밥 2개가 놓여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단출할 수도 있지만, 그 맛만큼은 풍성했다. 음식을 다 먹고 나니 포만감이 밀려왔고, 따뜻한 방바닥 덕분에 나른해졌다.


‘딱 5분만 누워서 자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다른 손님들도 있는 공간이라 그럴 수는 없었다. 마침 두 팀이 새로 들어왔고, 모두 설렁탕과 국밥을 주문했다. 궁금해서 잠시 기다렸다. 설렁탕 국물은 하얗고 맑았으며, 고기는 푹 익어 흐물거릴 정도였다. 맛이 궁금했지만, 이미 청국장 2인분으로 배를 채운 상태라 더 주문할 수는 없었다.

계산을 하면서 또 한 번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맛있게 배부르게 먹고, 두 명이 16,000원이라니…!”


식당 근처로 이사 오자는 농담을 하며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카카오맵에서 맛집 리스트를 열어, ‘태양식당’을 서둘러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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