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정도 행복일까.
아내의 배가 불러올수록 미래의 희망은 현실의 고통으로 다가오는 게 당금 남편계의 현실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예, 지금 곧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마 뭐 제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많은 선배제위께서는 적나라한 경험을 해보셔서 너무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마는, 어떻습니까. 그렇지요. 이게 정말이지 장난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기쁜 마음으로 흔쾌히 한다고 하는데요. 사실 솔직한 마음으로 귀찮고 아니꼽잖습니까.(저도 솔직히 처음에는 기쁘고 기쁜 마음으로 흔쾌히 자발적으로 했습니다.) 나이나 많으면 혹시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보는데서 행여 이런 내색이라도 했다가는 국물도 없습니다. 조심조심 속으로만 해야지요.
얼마 전에는 글쎄 발을 씻겨 달랍니다. 배가 불러서 허리를 숙일 수 없다나요. 한참 쳐다봤습니다. 그랬더니 당연한 걸 가지고 뭘 그러냐는 투로 저를 째려봅니다. 잠깐 머리를 굴려봤습니다. 나중에 득 될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팍 들었습니다. 전광석화처럼 “네 사모님 욕실로 가시죠.” 했더니 아내는 뒷짐을 지고 슬렁슬렁 따라옵니다. 뭐 사실 넓지도 않은 집에 슬렁거리며 따라올 것이나 있겠습니까마는 표현하자면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러더니 떡 서서 한쪽 발을 척하니 내밉니다. 좋습니다. 까짓것 뱃속에 아기 때문이라는데요. 왕후마마 모시듯 조심조심 물을 뿌리고 비누칠을 해 양쪽 발을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해말갛게 씻겨 주었지요. 그랬더니 아내는 금세 생글거리며 “고마워 오빠” 합니다. 참으로 가증스럽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건 배부른 유세의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입니다. 이미 와이셔츠를 제가 다려 입기 시작한 지는 5개월도 더 됐습니다. 언제부턴가 자기는 배가 불러 허리를 못 숙이니 와이셔츠는 저보고 다리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뒷말이 더 무서운데요. 허리를 숙이고 다림질을 하면 태아에게 안 좋다나요 어떻다나요. 할 말 있습니까. 당연히 그런 줄 알고 해야지요. 근데 그게 벌써 5개월이 넘었습니다. 하기야 해병대 30개월 칼같이 배운 다림질에다 오랜 자취생활로 다져진 실력으로 본다면야 다림질이야 어디 아내가 게임이나 되겠습니까마는 어디 그게 또 그렇습니까. 남편 된 체면에 아내가 다려주는 와이셔츠를 입고 싶은 게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니겠습니까. 좋습니다. 까짓것 와이셔츠는 제쳐두지요. 행여 누군가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고 하면 사실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김에 몇 마디 더 하겠습니다.
몇 해 전 대학교 과 선배 하나가 책을 낸 적이 있었는데요. 그게 무슨 책인가 하면 아내의 임신 첫 주부터 출산 때까지 남편이 해야 할 일들을 꼼꼼히, 바위 틈틈이, 모래알 짬짬이 기록한 책입니다. 누군가는 그 책대로 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읽어보면 별 치사한 내용이 다 적혀 있습니다. 뭐 이런 책이 다 있어 쫀쫀하게 시리…, 정말이지 당연히 안 팔릴 책입니다. 사실 초판도 안 나간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그 내용이 그대로 임신한 남편의 수칙에 적용된다는 기막힌 사실 아니겠습니까. 하루는 아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빠 발톱 좀 깎아줘”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사실 익히 체득한 바가 있어 알고야 있었지만 설마 나에게도 하는 마음이 있었든 게지요. 아! 그제야 저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옛말에 가로대 “하늘그물은 넓고 넓어 빠져나갈 곳이 없구나.”라고 하더니 이게 이런데도 적용되는구나. 감탄! 감탄하고져! 꿍쯔(孔子) 꿍쯔여! 천명이 이러할진대 미천한 남편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공손히 아내의 열 발톱을 모두 깎아 주었지요. 사실 이러저러한 일들을 모두 열거하자면 끝도 한도 없습니다.
더 해볼까요. 그럼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선배제위께서 가소롭다 웃을지 모르겠으나 허리띠가 풀림을 감수하고 하나 더 합니다. 아내는 임신 초기에 입덧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복이구나, 했지요. 아이스크림을 사다 준 적도 별로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게 막판이 되면서 사람을 죽이더군요. 먹을 거 엄청 찾습니다. 하루는 바나나, 하루는 아이스크림, 하루는 떡볶이, 하루는 파인애플, 하루는…. 물론 밥은 당근으로 잘 안 먹지요. 그런데 이걸 언제 찾는지 아십니까? 꼭 잠자기 5분 전에 찾는데요. 자기가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아기가 먹고 싶어 한다며 사가지고 오랍니다. 이거 사람 미치고 환장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요. 아기가 먹고 싶다는데 츄리닝 바람으로 온 가게를 뒤지면서라도 사 와야지요.
구구절절 남편 된 서러움이 많지만, 이만 줄이는 게 도리일 것 같아 이것으로 줄입니다. 그게 행복이라고요. 천마네이션입니다. 임신한 아내를 가진 남편은 피곤합니다. 투정도 행복이라면 할 말 없습니다.(1999.8)
※작가노트
글을 마치고 말씀드리는 겁니다마는 얼마 전 플로피 디스크를 정리하다 찾은 원고, ‘아내가 임신을 했습니다.’(브런치북 ‘아내의 여행’ 부록, ‘外傳’ 편 게재) 다음 글로 ‘아내는 임신 중’이라는 글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오래 전 일이라 뭘 썼을까?, 궁금해하며 읽어보았더니 좀 난처한 내용이었습니다. “뭐 이런 글을 다 썼나?” 할 정도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그래서 ‘이 나이에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아내는 임신 중’은 건너뛰고 ‘임신한 아내, 행복은 없다’로 바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뭐, 27년 전 글 입니다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