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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균 May 15. 2022

세 가지 즐거움樂에 대한 변辯

나의 유치하고 가벼운 논어 이야기①

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이 또한 군자가 아닌가?”


子曰 學而時習之不亦說乎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논어論語 학이편學而編>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는 잘 몰라도 이 문장을 한번이라도 들어 본 사람들은 꽤나 많을 것이다. 얼마전 친구와 함께 남한산성을 갔다가 막걸리를 한잔 마시게 됐다. 당연히 마셔야 할 일이었다.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왔고, 남한산성은 400여 년 전 치욕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었다. 친구와 성곽 길을 걸으며 한잔 마실 즐거움에 다른 친구 하나도 불렀다. 이 친구도 일을 마치고 저녁 무렵 합류했다. 한잔의 즐거움에 남한산성까지 택시를 타고 왔다고 했다. 일배일배부일배一杯一杯復一杯로 즐거운 시간을 거듭하던 중 공자의 이 말씀,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가 왜 인지는 모르지만 나오게 됐다. 그런데 이야기의 주제는 공자님의 배움에 대한 큰 뜻이 아니라 불역열호가 맞느냐? 불역낙호가 맞느냐?,하는 것이었다. ‘열(원래는 말할 열이지만 기쁠 悅의 뜻이라는 게 학자들의 견해다.)’이나 ‘락’이나, ‘기쁘거나’ ‘즐겁거나’ 매 한가지일 텐데 우리는 이를 가지고 한참이나 ‘열’이 맞네, ‘락’이 맞네 하며 떠들었다. 하지만 이 또한 즐거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 문장이 뭐 대단한 글인가 싶지만, 사실은 논어를 펼치면 맨 처음에 나와서 유명해진 글일 뿐이다. 논어 ‘학이편’이 논어의 처음에 나오는데, ‘학이편’ 첫 머리에 또 이 문장이 나와서 유명해졌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책을 사면 대개 첫 장은 반드시 읽는 것이 사람들의 습성이다. 사실 배우고 때때로 익혀봐야 술자리의 잡설(雜說, 사실은 ‘구라’라고 썼다가 단어가 좀 허접하고 경박해 문맥상 맛은 잘 안 나지만 ‘잡설’로 바꿨다.)밖에 늘지 않는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知天命를 오래전에 넘어섰고, 수많은 날들을 배우고 때로 익혀 왔지만 어디 오라는 곳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고로 배우고 때때로 익혀봐야 자기만족에 불과할 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게 내 경험이다. 그 시간에 설거지를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게 더 낫다.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면 즐거운 것은 사실이다. 이 핑계 저 핑계로 한잔하기에 더없이 좋다. 어디 친구가 오는 것뿐이랴, 친구를 찾아 가는 것은 더 좋은데 이 또한 한잔에 거는 기대 때문이다. 오죽하면 시선詩仙께서 친구하고 술 먹다가 술에 취해 “나는 잘 테니 내일 아침 거문고를 안고 다시 오라.明朝有意抱琴來”했겠는가? 이는 내일 술이 깨면 거문고 타며 또 한잔 하자는 뜻인데, 친구하고 술 마시는 게 이처럼 좋은 일이다. 즐겁지 않을 수가 있는가?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데는 인색하면서도 인정받고는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으면 기대에 대한 실망도 없다. 서로 각자 사는 세상,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괴롭고 서운하고 성낼(慍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성내다. 원망하다. 괴롭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공자의 시절에는 어려웠을지 모르겠지만 요즘 시절에는 우리의 위대한 정치에 큰 뜻을 품고 있지 않은 자라면 어려울 게 없는 것이 이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야박하고 약은 세상에서 군자君子가 돼서는 또 뭐 할 건가? 이는 즐거움이라 할 만하지 않다. 하지만 사실 남이 나를 알아주면 안 알아주는 것보다 좋긴 할 것 같다. 그런데 남이 날 뭐로 알아주나? 급이 안 되니 알아 달라 할 거리가 없다.


공자님이 말씀하신 삶에 있어 세 가지 즐거움을 궁구해보았으나, 다 해보아야 내겐 일락 반밖에 남는 것이 없다. 하지만 이라도 남아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이 또한 즐거움이지 않겠는가?


※‘일배일배부일배’와 ‘명조유의포금래’는 이백의 칠언절구 ‘산중대작山中對酌’에 나온다. “兩人對酌山花開 둘이 마주 앉아 술을 마시니 산꽃이 피고  一杯一杯復一杯 한 잔에 한 잔 또 한 잔 我醉欲眠君且去 나는 취해 자려하니 그대는 가시게 明朝有意抱琴來 내일 아침 생각나거든 거문고 안고 오시게


※군자는 원래 임금의 아들, 즉 통치자의 아들을 뜻한다. 개념이 넓혀지면서 귀족과 같은 말로 쓰였다. 하지만 공자 이후에는 사회적 위치와 관계없이 품성이 높아 존경받는 사람을 가리킨다. 지금 단어로 바꾸면 교양 있는 신사紳士인데, 신사는 매너를 잘 지켜야 한다. Manner makes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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