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진, 모든 무연고도 연고였다

어느 백수의 오락가락 독서일기/무연고無緣故/이생진

by 김무균

문에 난 신간新刊 기사를 읽다가 이생진 시인의 새 시집 ‘무연고無緣故’를 보곤, 휴대폰 메모란에 ‘무연고-이생진’이라 적어 두었다. 올해 우리 나이로 아흔, 시집을 내는 시인의 열정이 부러웠다.(백세에 한 해 빠지는 아흔 아홉에 책을 펴낸 김형석 교수 같은 분도 계시기는 하다. 시인의 시집 ‘무연고’에 나오는 시 ‘신년 생활신조’를 보면 1911년생인 일본의 ‘시바타 도요’는 90세에 시를 쓰기 시작해 99세에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냈다고 한다.) 오래전 읽은 시인의 맑고 투명한 섬 이야기 ‘그리운 바다 성산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의 상사가 무척 좋아한 시집이었는데, 책꽂이에 꽂혀있는 시집이 그분이 사준 것인지 아니면 내가 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음날 사무실 부근 서점에 들러 시인의 시집을 찾았다. 오프라인 서점이 늘 그렇듯 딱 한 권 있는 시집이 시코너 좁은 서가에 숨어 있었다. 얼른 빼어들었다. 그리곤 다시 눈을 멈추어 휴대폰 메모란의 아랫줄에 적혀 있던 ‘기억을 만난 적 있나요?-박완호’를 찾았다. 서가에선 찾을 수가 없었다. 컴퓨터로 검색을 해보니 재고가 없단다. 그래서 안내 코너로 가 한참을 담당직원을 기다린 끝에 예약 주문을 했다.


박완호 시인은 대학교 같은 과 친구다. 대학 4학년 때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이 시집은 그의 여섯 번째 시집이다. 그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30년 가까이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지금도 지극히 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시를 쓰고 있다.(대학 시절 우리는 꽤나 몰려다녔다. 간혹 수업도 빼먹고 몇몇이 모여 게임비 내기 당구를 치곤했다. 박 시인은 짠 150을 쳤는데, 물당구 150인 나는 늘 그에게 물렸다.-당구에서는 졌다고 하면 안 된다. 반드시 ‘물렸다’로 표현해야 한다. 야매 당구 용어 사전에 그렇게 나온다.-그리곤 파전집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복수를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기회가 오지 않고 있다.) 이번 시집은 문학나눔 우수도서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축하한다. 그의 시집을 사지 못한 나는 실체의 작은 시집 한 권과 제목만 있는 한 권의 시집을 예약한 영수증을 들고 카운터로 가 계산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평대 서가에서 들었다가 이제 하루키는 그만해야지 하면서 그냥 두었다. 아흔의 열정과 친구와의 친분이 다소 더해진 19,100(‘무연고’ 11,000원, ‘기억을~’은 9,000원이다.)이라는 숫자가 혀를 내밀며 출력돼 내 지갑 안으로 들어왔다. 급히 사무실로 돌아와 이생진 시인의 시집 ‘무연고’를 읽기 시작했다. 30분 만에 여든 한 편의 시가 기록(‘기록’이라고 하는 것이 마땅하다. 시인은 시를 쓰지 않고 기록하고 있었다. 그냥 내 생각이다.)돼 있는 그의 시집을 모두 읽었다. 시는 쉬워서 잘 읽혔다. 시인도 그의 시 ‘우선’에서 “시는 여전히 쉽게 쓰기로 했다.”고 한 것처럼 시인의 시는 누구나 읽는 그대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살아 있다는 거


아내는 가고 돌아오지 않지만

나는 살아서 친구와 전화할 수 있어 좋다

카톡을 할 수 있어 좋다

농담을 할 수 있어 좋다

살아 있다는 거

그게 죽어 있는 것보다 낫다

아내는 날 생각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죽은 아내를 그리워한다

나 혼자만 살아서 미안하다는 생각도 한다

자꾸 유치한 생각만 하게 된다


시인의 아내는 시 속에서 이태 전 돌아가셨다. 아내 이야기를 자주 하는걸 보면 무척 사랑하고 의지한 아내인 듯하다. 시 ‘오늘이 여기 있다’에선 “아내의 치마를 잡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가 내 곁을 떠난 것 같다/오늘의 치맛자락을 꼭 잡고 있어야 하겠다”고 회한인지 고백인지, 다짐인지를 한다.


시인의 신작 시집 ‘무연고’는 담담하다. 성산포 같은 푸른 잉크도 보이지 않는다. 부끄러움도 없고, 자랑도 없고, 유별남도 없다. 그저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마치 마주앉은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듯 무미無味하며, 스케치처럼 간결하고 수묵화처럼 담백하다. 시 쓰는 즐거움은 있는데, 시는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손으로 잡은 바람처럼 흔적이 없다. 생각해 보니 단지 공空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마음이 허허로웠고 우울해졌다. 그래도 시인은 사는 것이 행복했다. 음악을 듣고, 책을 사서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고, 시를 써서 행복했다. 살아져서 사는 게 아니라 살아서 살아지는 거여서 행복한 삶이었다. “나도 내일이 있어 기쁘다/내일은 하늘에 가니까”(시 ‘작은 산을 넘으며’ 中)처럼 죽음조차도 시인에겐 그저 일상일 뿐이다. 그리곤 마지막 한 줄, “끼니가 되거든 시는 이어가게” 나는 이 날숨 하나를 가슴에 담는다. 내 인생도 그러할까.


노인들끼리


노인들은 점점 기우뚱거리니까

서로 의지하려 한다

옆에 앉은 내게 사탕 하나 주며 몇 살이냐 묻는다

89요 했더니

자긴 77이라며

3년 후엔 자기도 80이라며

내 얼굴을 뚫어지게 본다

부러워하는 것인지

어쩐지 말이 없다

늙어가는 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냐마는

걸어가다가 쓰러질 확률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은

확실하다


갑자기 날씨가 차가워졌고, 날쌘 북방의 기병처럼 겨울이 찾아왔다. 다음주에는 박완호 시인의 ‘기억을 만난 적 있나요?’를 정독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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