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한 이야기03. 혼자가 아니었던 날들

by 무하mooha

내향형 인간인 나는 주로 작업실에서 보내는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했다. 혼자 충분히 생각하고 정리하며 충전하는 시간, 초침 소리조차 흐르지 않는 적막한 고요 속에서 마음이 가장 편안했다. 아마 365일 중 335일은 혼자 지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적막을 깨는 날도 있었다. 웃음과 대화로 공간이 달라지고, 익숙했던 작업실이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곤 했다.


작업실이 생겼던 초반에는 주로 친한 친구 몇 명과 남편만 다녀갔다. 친구들과는 늦은 밤까지 맥주를 마시며 끝없이 취기가 있는 대화를 이어갔다. 남편과는 집과 카페가 아닌 새로운 공간에서 현실적인 이야기와 앞으로 나아갈 설레는 미래를 그리기도 했다. 그 대화는 늘 우리의 분위기를 환기시켜 주었다.


시간이 흐르며 작업실을 찾는 얼굴들도 조금씩 다양해졌다. 위빙 원데이 클래스를 열던 날에는 여러 명이 공간을 채우며 작은 공간이 북적이고 활기를 띠었다. 촬영을 위해, 혹은 짧은 담소를 위해 방문했던 손님들과 함께 강아지들이 다녀가기도 했다. 브랜드 촬영 미팅을 위해 찾아온 마케터에게는 소품을 보여주며 어떤 컷이 잘 어울릴지 이야기를 나눴고, 이후 모델이 함께 와서 실제 촬영을 진행하기도 했다. 작은 브랜드를 운영하는 대표님은 촬영을 맡기기 위해 제품을 들고 찾아오기도 했다. 렌탈 스튜디오가 아닌 내가 천천히 가꿔온 공간이라 그런지 카메라에 담기는 모습도 자연스러워서 결과물에도 만족했다.


예상치 못한 인연들도 있었다. 촬영 모델을 구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과의 협업, 새로운 만남을 통해 알게 된 동료이자 친구와 각자 일을 하며 보낸 시간, 내 포트폴리오를 보고 연락해온 사람과의 첫 미팅.

사실 처음엔 이런 만남이 무척 긴장됐다. 내 공간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해내고 나니 그 긴장감과 설렘이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았다. 나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상상하고 나를 극한으로 밀어 넣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실제로 마주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훨씬 낫고, 덕분에 안도와 자신감이 따라왔다. 그날의 미팅도 그 습관 덕분에 의외로 잘 흘러갔고, 나에겐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작업실이 있었기에 이런 만남이 가능했구나’라는 생각이 내게 특별했다.

내 속도와 내 방식대로 마주한 만남들이었기에 더욱 진심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들이 있었기에, 혼자가 아니었던 날들이 내게 오래도록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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