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주체적으로 본인의 일을 하는 사람을 동경해왔다. 특히 나만의 작업실에서 여유롭게 또는 바쁘게 일을 하는 사람을. 작업실 한쪽엔 빛이 잘 들어오는 통창이 있고 구석 작업 테이블엔 그림이나 문서가 널브러져 있으며 오전엔 맛있는 커피를 내려서 테이블에 앉아 일을 시작하는 모습을 상상해왔다.
나도 작업실이 있으면 내 상상처럼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멋진 30대 여성의 모습일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짐작했겠지만, 물론 상상이랑 현실은 달랐다. 퇴사 후 명확한 나의 일이 없는 동안에도 내가 뭐라도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던 건 바로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프라이드였다. 작업실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 커뮤니티에 가입하여 활동했던 적이 있었는데 자기소개를 적는 공간에 이렇게 적었었다.
"뾰족하게 하는 일은 없지만 작업실은 가지고 있어요." 그만큼 모호한 내 상황에서 작업실은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지만, 동시에 멋진 사람의 모양새만 흉내내는건 아닌지 찔리는 마음도 있었다.
커뮤니티 활동을 하며 평소답지 않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작업실에도 여러 사람이 오갔다.
사진촬영 미팅을 위한 클라이언트, 촬영모델, 스냅 의뢰인, 위빙 원데이 클래스 참여자 등 일을 이유로 찾아오는 사람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작업실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뿌듯했다. 촬영이 많을때는 늦게까지 편집을 하고 위빙 브랜드 주문이 있을 때는 티코스터를 만들고 포장을 하기도 하며 다음 스텝을 고민하며 새벽에 퇴근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새벽 2-3시에 집으로 향할 땐 피곤함보다 뿌듯함이 더 컸다.
그렇게 뿌듯한 날들만 이어졌다면 참 좋았겠지만 좌절하는 날도 많았다. 작업실에서는 한껏 우울감에 잠기거나 엉엉 울기도 했다. 그런 날의 이유는 대부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재의 나 때문이었다.
어느 날에는 작업실에서 평소 혼술의 주량보다 더 많이 마시고는 혼자서 영상을 켜두고 취중진담을 하기도 했다. (그 영상을 두 번 보긴 창피하지만 그때의 나의 마음은 속으로만 하는 말들이 많은데 밖으로 분출해도 창피하지 않을 곳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집에서는 하지 못하는 생각이나 고민과 계획들을 혼자 마음껏 펼쳐볼 수 있는 곳이 작업실이었다. 외적으로 촬영과 클래스, 브랜드 작업이 이루어졌지만, 내적으로는 더 많은 것들이 태어났다. 나의 두번 째 이름인 '무하'라는 이름도 작업실에서 골몰하며 지어졌고 사업자명과 위빙 브랜드의 새로운 이름도 모두 작업실에서 탄생했다. 내가 진정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도 깨닫게 된 곳이었다. 작업실은 친구와의 깊은 대화를 위한 조용한 공간이 되어주었고, 남편과의 평화로운 시간이나 미래 계획을 하기 위한 공간도 되어주었다.
무엇보다 작업실은 내가 꿈꾸던 삶의 형태를 시험해 본 소중한 공간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내가 되고 싶던 사람의 모습에 가까워진 것 같았지만, 사실은 표면적인 흉내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 겉모습이 나를 버티게 했고, 결국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