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기, 키보드를 두드리며 나를 돌보는 시간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요즈음의 나에게 글쓰기는 '마음을 돌보는 것'이다. 잔잔한 음악을 틀어두고 따뜻한 맹물이나 갓 우려낸 찻물을 들이키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행위가 나에게 큰 위안이 된다. 타닥타닥 글을 써내리는 그 순간만은 마음이 평온해지고 휘몰아치던 머릿속에 짧은 고요가 찾아온다. 써내리는 글이 나를 힘들게 하던 것들에 대한 내용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마음이 답답할 때 본능적으로 글을 쓴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을 때, 해답이 없는 고민들, 누군가에게 털어놓기 조금 구차한 걱정거리, 아무 글이나 무작정 쓰다 보면 정답은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이를테면 이럴 때.
누군가 많이 미울 때, 회사 생활에 갑자기 슬럼프가 찾아올 때, 가족들과의 트러블, 돈 문제와 같은 현실적인 고민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특히나 부정적인 마음이 나를 지배할 때 글을 쓰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미워하는 사람에 대해 글을 쓴다고 해보자. 우선은 미워하는 대상에 대한 감정과 상황을 글의 형식이나 완성도에 괘념치 않고 무작위로 쏟아낸다. 비문이어도 상관없다. 아무렇게나 나의 마음을 토해내다 보면 미움이라는 굴레에서 한결 가벼워진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때부터는 글의 과녁이 자연히 '나 자신'에게로 옮겨지더라. 나의 감정의 원인에 대해서 바깥에서 안쪽으로 한 걸음씩 생각의 추를 옮겨나가다 보면 나도 몰랐던 마음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이 그렇게 심하게 군건 아닌 것 같은데 내 감정이 이렇게까지 휘둘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사람의 어떤 행동이, 어떤 말이 나를 이렇게 날카롭게 반응하게 한 걸까, 내가 유독 이런 행동에 상처를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
친하게 지내던 A와 멀어질 뻔한 일이 있었다. 사소한 말투와 행동에서 시작된 미움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해도 마음이 잘 고쳐지지 않았다.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 미움을 글로 쏟아내던 그 날, 글의 끄트머리에서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튀어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이용해 친해질수록 함부로 대했던 친구에 대한 기억, 나를 하찮은 대상이라는 듯 우스꽝스럽게 표현했던 누군가, 나의 의견에 반기를 들며 무조건 적인 반대를 했던 너. 좋아하는 마음을 잘 감추지 못하고 상대의 감정을 눈치채는 데 둔한 편이었던 나는 때때로 마음이 무시당하는 경험을 겪었다.
생각지 못한 전개였다. A의 사소한 말투와 행동을 보면서 어릴 적 받았던 '마음이 무시당하는 느낌'이 되살아 난 것임을 글을 쓰던 도중 깨달았다. 나 자신 조차 이런 상처가 있음을 모르고 살았다.
신기하게도 상처의 의미를 알게 되면 전보다 쉽게 생각이 정리된다. A가 정말로 나의 마음을 무시하는 나쁜 사람이냐고 생각해보면 대답은 '아니오'였다. A에게 이런 나의 마음을 넌지시 표현했을 때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사람인가 생각해보니 그것도 '아니오'였다. 이튿날 A에게 이런 내 마음을 조심스레 꺼내며 엉킨 감정을 풀어내자 미움은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 나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 남들보다 더 쉽게 상처 받는지, 한 가지 경우를 더 알게 되었다. 비슷한 상황이 다시 찾아온다면 아마도 미움의 감정이 나를 삼켜버리기 전에 내면의 상처를 한 번 더 바라보고 먼저 보듬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매일을 살아 내다 보면 다양한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기분은 좋았다가도 금방 나빠지고, 걱정은 없었다가도 무한정 많아진다. 마음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나면 그 마음이 덜 생겨나게 할 수 있다. 온몸에 소금을 들이부어도 상처가 없다면 그렇게까지 아프고 아리지는 않을 것이다. 내면에 난 상처의 위치를 알았으니 상처 부위를 좀 더 조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상처가 아물어 더욱 단단한 새살이 돋아 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마음을 돌보기 위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