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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eelike Nov 27. 2020

길을 걸었다

오후에 산책을 하러 갔다. 오늘은 나무들을 관찰하리라 생각하고 걸었다. 나무들이 있으면 ‘네가 여기 있구나’ 하며 걷기 시작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며 본 모과나무엔 아직 잎이 매달려 있다. 아파트 뒤편에 있는 감나무에 달린 감 하나는 새가 쪼아 먹었는지 반만 남았다. 


관심을 가지고 보니 나무가 너무 많다. ‘네가 있구나’ 하며 모든 나무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저녁 늦게까지 집으로 못 돌아올 정도로 많다. 오늘은 몇 개에만 관심을 가지고 산책을 하러 갈 때마다 새로운 나무를 발견해야 할 것 같다. 아파트 담장 안에는 소나무가 있고, 학교 테니스코트 옆에는 버드나무도 있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 옆에도 나무들이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달이 보인다

찻길을 따라 쭉 내려가 산책길로 들어섰다. 공간만 있다고 산책길이 되는 건 아니다. 좁고 길게 이어진 이 길을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이유는 나무들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나무들을 보니 나무 하나하나를 선택해서 가져오고, 심고, 가꾼 많은 사람이 보이는듯하다. 이 나무들이 계속 잘 자라게 누군가는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다른 곳에서 살아온 나무는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졌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새로운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버티고 살아온 나무가 대단해 보인다. 

나뭇가지 사이에 보이는 달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옷깃을 여미고 나무 사이로 천천히 걸었다. 나무들을 보니 눈이 맑아지는 듯하다. 마음에 조금 여유가 생긴다. 나무들 사이로 길 건너에 있는 가게들이 불을 밝히고 있는 것이 보인다. 노란빛이 나는 등이 아늑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5시 30분, 저녁 산책길에 불이 켜졌다

나무에 관심을 가지고 보니 나무와 좀 가까워진 느낌이다. 홀로 걸었지만 혼자가 아닌듯하다. 나무들과 함께 있다. 혼자이지만 쓸쓸하지 않다. 나무가 친구 같이 느껴진다. ‘나무랑 친구 해야지’ 내가 원할 때 그곳에 가면 항상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생겼다. 나무처럼 살고 싶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집으로 가는 큰길에도, 건널목 신호등 옆에도 나무가 있으면 좋겠다. 여름이면 그늘을 만들어주고, 가을이면 예쁜 색깔로 물드는 나무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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