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달력에 아무 표시도 없는 날이다. 누군가를 만나야 할 이유도 없고, 서둘러야 하는 일도 없다. 그냥 내 속도대로 할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예전의 나는 이런 날을 조금 경계했다. 다른 사람들은 바쁘게 저 멀리 가고 있는데, 나만 멈춰 선 듯 느껴져 괜히 뒤처진 것 같고, 설명할 말이 없는 하루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보낸 하루를 다른 사람에게 굳이 설명할 이유가 없다고 느낀다. 아무 약속이 없는 날에도 하루는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아침 햇살이 거실에 도착했고, 물을 끓이는 동안 창밖의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하늘을 본다. 하루는 이미 시작되었고, 나무가 그냥 서 있듯이 나도 여기에 있다.
나는 카피를 마시며 잠시 앉아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한다는 생각 없이 앉아 있는 시간, 시간에 맞추려고 동동거리지 않는 시간, 뒤처지지 않으려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있는 이 시간이 편안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아무것도 요구받지 않는 시간이 이제야 편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이 하루를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이 시간을 채우지도, 바꾸지도 않고, 그냥 이 상태로 나누기로 했다. 아무 약속 없는 하루에도 온기가 있다는 사실을, 그래도 괜찮다는 사실을 오늘의 나에게 먼저 알려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