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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Mar 07. 2021

이분법의 함정을 이겨내는 이성의 힘

하트시그널2 김현우의 매력

며칠 전에 한 친구가 저녁에 곱창을 먹고 싶은데 살이 찔 것 같아서 못 먹겠다며 고통스러워하자, 다른 친구가 조금만 먹으면 되지 않냐고 드라이하게 이야기했다. 언뜻 들으면 합리적인 해결책인 것 같지만, 문제는 그 친구가 한번 뭘 먹기 시작하면 멈추지 못하는 종류의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도 all or nothing 식으로 고민을 했던 것인데, 전략을 잘 세운다면 곱창 먹고 싶은 마음을 만족시키면서도 폭식하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곱창을 적당히 먹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인상적으로 여긴 것은, 세상 많은 일들이 이와 같이 A or B의 상황으로 다가온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는 이미 올드패션한 질문이 되어버린 듯하지만, 이와 같은 이분법의 질문을 일상에서 종종 받게 된다. 그리고 많은 순간 난처하고 곤란해진다. 세상일과 내 마음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A or B'의 상황에서 'A 60%, B 40%'라고 대답할 수 있는 기회는 잘 주어지지 않는다. 당황하다가 A와 B 둘 중에 하나를 마지못해 선택하고, 시간이 흐른 후에 그게 내 답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에 '하트시그널2'라는 프로그램이 화제였다. 좋아하는 유형의 프로그램도 아니고, 대개 배가 아파지기 때문에 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었는데, 우연히 어느 클립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오영주가 김현우에게 본인이 머리를 묶는 게 나은지 아니면 푸는 게 나은지 물었을 때, 김현우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몇 초간 생각했다.

곧이어 나온 그의 대답은 '평소에? 아니면 오늘?'이었다. 프로그램의 여자 패널들이 '저렇게 말하는 남자 처음 봤다'며 감탄을 했고, 나 역시 감탄을 했다. 다만 내가 감탄한 포인트는 '대답이 신선해서'가 아니라,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답하기 쉬운 질문으로 바꾼 그의 이성적인 행동에 있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청받는 순간, 자주 이분법의 함정에 빠져 마치 그 둘의 선택지 밖에 없는 것으로 착각하는 상황이 생긴다. 그때 상황에 끌려가지 않고 잠시 대답을 보류할 수 있는 힘은 이성에서 나온다. 김현우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들 찍먹과 부먹을 고민할 때 '절반은 찍먹, 절반은 부먹을 하자'고 말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거래처에 지불해야 할 이백 만원의 대금이 밀려있을 때, 한 번에 다 지불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우선 오십만 원이라도 먼저 입금하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할 수 있는 융통성을 좋아한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어른스럽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당돌함을 좋아한다.


대개 정답은 둘 중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런 류의 사고를 단련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라면 답하지 않고, 굳이 답해야 한다면 답할 수 있는 질문으로 바꿀 수 있는 이성의 힘은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매력적이다. 하트시그널2의 김현우가 매력적이었던 이유.


아, 역시 배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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