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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Jun 03. 2023

#18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헤밍웨이 1부

암스테르담엔 보텔(Botel)이라 불리는 숙소가 있다. 선박을 숙박업소로 개조한 곳인데 운하의 도시답게 암스테르담에서는 보텔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보텔에 묵게 된 것은 순순히 우연이었다. 숙소를 검색하다 'Vita Nova'이라는 이름의 보텔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숙소 이름이 '새로운 삶'이라니. 이곳에서 암스테르담 여행을 마치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을까. 보텔이 위치한 선착장 역시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비교적 저렴한 값에 1인실을 이용할 수도 있어 내친김에 암스테르담에서 보낼 5일 중 마지막 2일은 보텔에서 지내기로 했다. 



3일간 머물렀던 호스텔을 뒤로하고 보텔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적게 잡아도 2만 보는 넘게 걸었을 하루였기에 다시 호스텔로 돌아와 맡겨두었던 짐을 챙겨 떠나는 것은 정말이지 귀찮고 피곤한 일이었다. 더욱이 한국을 떠날 때 짐을 급하게 싸는 바람에 캐리어 안에는 온갖 불필요한 짐들이 가득했다.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꺼내볼 일이 없는 것들이었지만 불행하게도 볼 일이 없는 순간에도 묵직한 존재감을 온종일 드러내곤 했다. 



호스텔을 나와 운하를 건넜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지만 피곤한 탓인지 NEMO Science 박물관을 지나 선착장에 이르자 완전히 녹초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선착장을 둘러보아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숙소는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예매 당시 받았던 약도를 살펴보았지만, 선착장에서 배를 찾을 수 있다는 설명만 덩그러니 있었다. 약도 아래의 주소를 검색해도 그저 선착장 위치만 나올 뿐이었다. 이미 해가 거의 지고 있었기에 마음이 급해졌다. 



Nemo Science 박물관 근처에는 작은 선착장들이 여러 개 펼쳐져 있다. 내가 선착장을 잘못 찾아왔을지 모른다는 생각과 보텔 '새로운 삶'이 일신상의 이유로 잠시 다른 선착장에 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결국 그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30여 분간 박물관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한참을 돌아다녀도 숙소는 보이지 않았다. 너무 지친 나머지 부실한 약도를 올린 숙소 측에 화가 나기도 했고, 이러다가 오늘 밤까지 입실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다. 



결국 몇 바퀴를 돌고도 숙소를 찾지 못해 처음 도착했던 선착장 앞으로 돌아왔다. 자리에 주저앉아 아기가 곰인형을 안듯이 캐리어를 몸 앞으로 끌어안았다. 앉아서 허리를 세우고 있을 힘도 없었다. 그 순간 내 눈앞에 거짓말처럼 자그마한 배가, Vita Nova라고 적힌 배가 보였다. 반가움과 고마움,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충격이 한순간에 몰려왔다. 그중 가장 여운이 긴 것은 충격이었다. 



맙소사. 이렇게 작을 줄이야. 이 앞을 몇 번이고 지나면서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바로 배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었다. 제주도에서 흔히 보는 오징어 잡이 배에 지붕만 덧댄 것 같았다. 여기에서 2일을 묶어야 한다니. 이 안에 정말 객실이 들어있긴 한 건지 의심스러워졌다.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온통 지친 몸을 이끌고, 가득 찬 캐리어와 방금 부풀어 오른 의심을 안고, 마침내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갔다. 



* 2016년 1월 네덜란드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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