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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Jun 06. 2023

#21 미술실의 호랑이 선생님

올해 들어 유난히 뉴스에서 '저출산'이라는 단어를 많이 듣는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10년 전에도 분명 같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것 없는 문장들이 미디어에서 반복된다. 현상을 진단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언급을 반복하는게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출산이 탄생보다는 실적이 가까운 단어였다. 메시지는 전달되지 않고 그저 외딴곳에 방치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음악, 미술, 컴퓨터와 같은 과목을 담임 교사가 아닌 교과 담당 교사를 통해 배웠다. 교실도 따로 있어 수업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 교과실로 향했다. 미술 선생님은 임산부였다. 머지않아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고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미술 시간이 되자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소 떼처럼 달려 미술실로 향했다. 미술 선생님은 계시지 않았다. 



미술 선생님이 계셔야 할 교탁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계셨다.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소리를 낮추었다. 10살이 갓 넘은 아이들 눈에 할아버지 선생님은 당연히 무서운 존재였다. 거기다 이전에는 인사를 나눈 적도 없는 처음 본 낯선 사람이었으며, 심지어 손에는 회초리가 들려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호랑이 선생님'이 아닌지 모두들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는 짧게 인사하고는 미술 선생님의 부재로 자신이 수업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여러분, 미술 선생님이 지금 무엇 때문에 학교에 못 나오는지 아시나요?" 걱정과 다르게 호랑이 선생님은 따뜻한 존댓말로 수업을 시작했다. 그제서야 분위기를 파악한 아이들은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아기를 낳으러 갔어요. 아기 낳으러 병원 갔어요. 동생이 태어난데요. 갖가지 대답이 쏟아져 나오고 어떤 아이들은 그냥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호랑이 선생님은 손에 쥔 회초리의 끝을 다른 손으로 잡고는 곰곰이 듣고만 있었다. 시끄럽다며 말을 끊지도 않았다. 그저 모두가 각자의 대답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모든 대답이 끝나자 호랑이 선생님은 감았던 눈을 뜨고 선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미술 선생님은 우리 인류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을 하러 가셨습니다. 바로 새로운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일입니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나는 여전히  그 순간을 기억한다. 임신, 출산, 아기와 같은 단어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인류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나에게 출산을 그렇게 설명해 준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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