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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Jun 07. 2023

#22 So long, partner

잠시 고향에 내려왔다. 이제 고향에 남은 것이 많지 않다. 본가는 교외로, 모교는 멀리 떨어진 이름 모를 언덕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주 어린 시절 살던 동네는 공사가 한창이라 그대로 남은 것은 시꺼먼 도로뿐이라고 했다. 18살에 자습을 빼먹고 친구들과 출근도장을 찍던 극장도 얼마 전 건물이 통으로 팔렸다고 했다. 같은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했다. 어제 그곳 앞에 서니 몸 안에서 커다란 무엇인가가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만날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다. 20대의 절반을 지났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고향에 남아있었다. 이후 몇몇은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났고, 몇몇은 고향에 여전히 남아 있었으나 내 마음에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고향을 올 때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익숙한 골목 한 귀퉁이에서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와 낯익은 얼굴을 마주칠 법도 하다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알 길은 없었다.



고향은 언제나 익숙한 장면이 다시 재생되는 곳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영사기가 돌아가지 않는다. 이번 주말엔 두 명을 만났다. 어느 시절엔 한평생을 이곳에서 살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두어 명을 만나는 것이 큰일처럼 느껴진다. 이틀간 그들과 헤어지며 던진 인사가 문득 고향에게 보내는 작별 인사처럼 느껴졌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사라진 이름들을 생각했다.


 

시간은 자정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주말이라 밖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거리로 나가 골목을 걸었다. 20대의 절반을 보냈던 오래된 골목과 이제는 흔적도 없어진 단골가게 터를 지나 모교가 있던 자리에 이르렀다. 빈 건물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등굣길과 살았던 아파트를 지나 그 시절 매일 밤 걸었던 골목을 다시 걸었다. 이어폰에서는 낯익은 음악이 흐르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는 것 같았다. 스치는 자동차 주행 등마저 희미하다. 나는 그렇게 고향과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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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7월 처음 쓰다.

* 2023년 6월 고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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