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홀로 하루를 정리하다 마음이 불온한 생각과 예기치 않은 소란으로 버쩍버쩍 죄어진 나를 마주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평소보다 어쩐지 멍했고 활기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불안함과 외로움이 적절히 버무려진 이 기분이 드는 걸 보니 우울난리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이 우울난리는 내가 원하던 삶이 이게 맞나 하는 불안함과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정말 중요한가 라는 의문이 뒤섞인 상태입니다. 마치 잔잔한 호수 표면 아래 감춰진 소용돌이처럼, 외견상 조용해 보여도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정들이 서로 충돌하고 어우러지는 것이지요. 이런 날에는 무엇을 하기보다는 이 난리를 잠재워야 합니다.
어린 시절, 저는 작은 실패에도 쉽게 낙담하며 좌절했습니다. 그럴 때면 마음에 우울이 자리 잡아, 제 삶에서 성공이나 행복과 멀어지게 했습니다. 이 우울함은 좁은 틈에서도 어떻게든 꽃을 피워내는 들꽃처럼 생명력을 다해 커갑니다. 좌절과 낙담을 제때 해소하지 못하면 오늘처럼 우울난리가 찾아오고야 마는 겁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오래된 일기장을 펼쳤습니다. 수많은 날들의 기록 속에 적힌 문장과 거기에 담긴 감정들은 아주 희미하거나 너무나 뜨겁게 다가옵니다. 그 문장을 더듬어 오래전 잊고 있던 제 모습을 불러내어 지금 다시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많습니다. '누가 나를 뒤에서 욕하고 다니네', '내가 실수했는데 사과하기가 싫네'처럼 말입니다. 일기장을 꺼내든 김에 사과하기 싫다는 문장 밑에 그래도 사과하길 잘했네. 잘했다고 작은 글씨로 몰래 적어놓았습니다.
그러고 새로운 노트를 꺼내 이 우울난리가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도 적어보았습니다. 회사가 이상하네. 이상한 사람들이 많네. 이직은 어쩌나. 무얼 먹고사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게 많이 없네처럼 말입니다. 사실 이렇게 적어보는 것만으로 내가 너무 작은 감정의 모서리에 함몰되어 있구나 하는 걸 느낍니다.
그리고 이 우울난리는 단순한 불안함이나 고독이 아니라, 나 자신이 경험한 수많은 좌절과 아픔,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나의 새로운 결심의 기록임을 느낍니다. 그런 생각들을 두서없이 노트에 적어 내려 갔습니다. 얼마큼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것 또한 가볍게 생각하며 웃을 날이 많아지겠지요.
그래도 지금은 차분히 정리된 이 우울난리에 제 감정을 맡겨놓았습니다. 내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한 걸음 멈춰 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들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스스로 다잡으며 말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작은 단서를 찾아 나서야겠지요.
홀로 앉아 있던 저는, 이런 제 마음의 소란 속에서도 스스로를 발견하는 조금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외부의 어둠과 내면의 불안이 하나로 어우러져 이룬 이 감정의 파편들이, 언젠가 또 다른 빛으로 피어날 날을 꿈꾸며, 오늘을 살아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