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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묵 Dec 30. 2022

너바라기

멍하니 너를 바라보는 일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날인가에

잔뜩 핀 해바라기 동산을 본 적이 있다.

정오를 넘어가는 시간에 고개를 들던 해바라기들

자신이 바라보는 해.

그것만 있으면 된다는 듯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는 것 같아 더 환해 보였다.


나를 본 너는 어땠을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방법은 모른다.

너를 본 나는 어땠는 줄 아는가.

나는 나의 마음도 정확히 몰랐다.

아니, 어쩌면 마음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문득, 사랑은 예상할 수 없는 시기에

 예측할 수 없는 만큼

주게 돼버린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온전히 너를 알 수 없지만

그래서 사랑하게끔 돼버린 건가.


나긋한 말에

명민한 정신이 새겨진 걸 안다.

조금은 가벼운 웃음에

 무거운 우울이 가리어진 걸 안다.

꾸미지 않는 행동에

 순수함이 있다는 걸 안다.

길을 헤매는 모습에

 막연한 불안함이 있다는 걸 안다.

감사함을 표하는 모습에

도덕적 선을 좇음을 안다.

삶을 독백하는 모습에

삶에 고민이 있었음을 안다.

어쩌면 이 모든 모습들이

외로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람은 원래 두 머리에

두 쌍의 팔 두 쌍의 다리를 가지고 태어났으나

 벼락에 맞아

 나와 너로 갈라지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과 같은 사람을

끊임없이 그리워한다는 이야기 말이다.

벼락 맞은 상처 위를 덮은 굳은살이 꿈틀거려

 내 연약한 살을 스칠 때

 저 이야기가 떠오르곤 한다.

어쩌면 모자라 보이는 내 모습에 대한

자기 연민과 자기애 정도밖에 안 될지 모른다.

상처가 쓰릴 때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점점이 떠오른다.

어쩌면 나도 내가 알고

 기억하고 싶어 하고

 그런 것들만 겨우 나에 대해서 아는 것 아닐까.

나는 온전히 나를 모르는 채 살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너를 본다.

우두커니

 해에 따라 구름 따라

때론 풍파에 지고 비를 맞으며

고개를 움직이는 해바라기처럼 말이다.


그 안에서 나는 나를 본다.

외로움을 떠올리는 몇몇의 말들과

어쩌면 이것도 사랑일지 모른다는 건방진 생각을 떠올린다.

바람이 불어도 비가 내려도

 네가 구름에 가리어져도 나는 너를 본다.

수많은 생각, 사랑이 나와 너를 휩싸는 듯하다.

그렇게 나는 너를 본다.

좋음과 사랑에 대한 생각, 정의, 경험들을 마음에 잠시 담아두었다가 한편으로 치운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걱정과 불안도 같이 담아 치운다.

그렇게 나는 너를 본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은지는 모른다.

나는 그냥 너를 보는 너바라기이다.

우리라는 동산에서

 나는 나를 보면서 너를 떠올리고

 널 보며 날 떠올리는 너바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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