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토해내는 일
가장 두려워하는 게 가장 원하는 거래요.
가볍게 술을 즐기며 대화하던 중 한 문장이 소음을 뚫고 나온다. 취기보다 빠르고 확실히 올라오던 그 말. 그녀는 어느 부족의 안녕을 비는 주술사처럼 확신에 찬 눈으로 말한다. 그 눈빛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던 예전의 나를 보는 듯했다. 가슴 한편이 서늘했다. 그래서 '오, 기억해 놔야겠네요.'라고 대답하고서도 좋은 문장이네요 라거나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 말이에요.라고는 할 수 없었다. 가장 두렵고 원하던 게 뭔지 입술 사이로 단어들이 나오지 못하고 뭉그적거리며 맴돌기만 했다. 뭐가 날 무섭고 불안하게 하길래 그런 건지 어렴풋이 짐작 갔다.
나를 토해내는 게 가장 두려웠다. 실은 유약한 내 정신을 사람들이 알아볼까 겁 났다. 입으로는 '사람은 온전히 타인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정제된 말을 하면서 사실은 나부터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을 적당히 꾸미고, 나도 적당히 받아들이고 그렇게 살아갔다. 그렇게 사람은 원래 여러 잣대와 모습을 가진 채로 적당히 살아가는 거라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전에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그런 적이 있다. 즐거웠던 20살의 추억을 다른 신입생들도 느꼈으면 해서 노력했다. MT를 편하게 가기 위해 사비를 털어 미니버스를 빌리고 후배들에게 맛있는 걸 사주기 위해 아낌없이 생활비를 털어 넣었다. 책임감 이라기보다는 그냥 그게 진심이었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끼리 좋은 추억 보냈으면 하는 그런 생각. 어쩌다 보니 지난 추억에 매달리는 꼴이 돼버리고 말았지만. 날 애정하던 선배는 그 모습에 '네가 그러려고 사는 건 아니잖아. 너를 위해서 살아야지'라고 조언했다.
날카로운 조언에 공감한 후 사람들을 쉽게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진심을 다하더라도 누군가에겐 별 가치가 없을 수 있단 걸 인정했다. 착함을 생존의 무기로 연마하던 나약한 나를 돌보기 위해 스스로 비정해졌다. 그렇게 적당한 합리화와 잣대로 관계의 거리를 계산하며 비정함을 휘둘렀다. 그러자 사람들은 오히려 어려워하며 나를 높였다. 그런 날이 반복되자 억지로 큰 알약을 삼킨 것처럼 하루를 삼키면 목구멍이 따가워 인상을 찌푸려야 했다.
그러면서도 글을 쓸 때면 누군가 내 진심을 알아봐 주길 원했다. 진심을 담아 쓴 글을 아무도 안 알아줄지, 다른 사람에게 가치 없는 글이 돼버리는 건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글을 쓸 때면 늘 그걸 두려워하면서 그렇지 않기를 원했다. 그래서 목구멍이 따가워지는 날이면 더 글을 써댔다. 때때로 글에서도 비정함이 묻어 나오면 그 날카로운 글이 나를 찔러댔다. 나와 글은 그렇게 서로 등을 맞대어 세상을 찌르기도 하고 서로를 찌르기도 했다.
소중한 걸 소중하게 여기도록 노력했다. 모든 것에 사랑을 갈구하지 않고 진심을 터놓는 것들에 나도 더 솔직하게 대하려 했다. 그렇게 글과 맞닿은 살을 깎아가듯 안아주듯 서로 투닥거리며 다듬었다. 두렵다는 이유로 미처 다듬지 못했던 회한들이 새록거리며 잠들어 가는 걸 지켜본다. 대단한 두려움인양 속에 옹졸하게 품고 사는 게 또 부끄러워졌다. 삐죽빼죽한 글과 멋대로 부어버린 목구멍을 조금 달래기 위해 오늘 또 마음대로 조금의 나를 토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