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하는 댓글입니다
여유가 되면 아무 시간이고 브런치앱을 켜서 글을 읽는 게 버릇됐다. 요새 책 읽는 시간을 줄이고 있는데, 브런치에서 읽는 시간 때문에 글 읽는 시간은 오히려 더 늘었다. 그렇게 글을 읽을 때면 더 잘 읽기 위해 댓글로 짧은 감상을 남긴다. 허투루 읽고 댓글을 달면 작가는 다 알기 때문이다(?)
브런치를 뜯고 맛보고 있노라면 예전에 SNS를 왜 안 하는지 물어봤을 때, 공유할만한 일상이 없어서 안 한다고 한 게 생각난다. 지금도 생각은 여전히 같을 텐데, 가벼운 일상은 공유 안 하면서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나 속마음은 계속 쓰고만 싶은 건지. 그저 글을 적는 곳이기 때문인가?
어쩌면 내 글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나를 응원하는 댓글을 만났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같이 글을 쓰고 있다는 이유로 응원해 주시는 많은 작가님이 계신다.(감사합니다) 나도 그런 작가님들의 응원 덕분에 한 글자라도 더 적을 용기를 낸다. 그래서 난 좋은 글들을 읽으면 댓글을 달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님의 허락도 맡지 않고 무단으로 댓글을 캡처해서 글을 써도 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글의 소재로 이용되는 거니 허락하실 거라 믿고 써 본다. 브런치를 하기 전에도 내가 쓴 글이 다른 사람도 잘 읽을 글이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하고, 일말의 불안감들을 그래도- 그래서- 그럼에도- 그렇더라도-라며 계속 곱씹어가며 적는다. 나는 악필이다라는 글을 처음 쓸 때는 단순히 내가 악필이니 새해 다짐으로 악필을 교정하는 글을 쓸 생각으로 글을 썼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글을 쓰니 중구난방 하고 싶은 말만 지껄이고 있었다. 아뿔싸, 나는 여전히 내 마음을 글로 적는 게 서툴구나. 그런 생각이 들고서야 적힌 글을 모두 지우고, 그냥 솔직한 내 삶을 악필의 관점으로 적었다. 그제야 마음의 글이 적히기 시작한다.
댓글은 타인이 내 글을 잘 읽었음을 나타내는 가장 간단한 지표다. 댓글, 거기서 작가는 응원과 공감의 힘을 전해 받는다. 아는 동생과 같이 밥을 먹는데, 자신이 아직 방황하는 중인 것 같다는 말을 해왔다. 전에는 좋아하던 게 일이 되니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더 이상 즐겁지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잃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이룬 것 없는 나의 위로가 얼마나 힘이 될지 알 수 없어 저 댓글의 힘을 빌려 대신 말했다. '나도 글을 쓸 때 내 것이 아닌 데 집중하니 도대체 이게 무슨 글이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그냥 내 삶을 조금 솔직하게 썼어. 근데, 어떤 시인인 작가님은 내 못난 악필을 가지고 쓴 글에도 저런 멋진 말을 해주더라니까? 나도 네가 해준 제안 덕분에 멋진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잖아. 그러니까 너무 잘하려고 욕심 내지 말고, 조금 힘 빼고 하자.' 머릴 비우고 그냥 하는 것, 참 어렵다. 그래도 응원받을 수 있는 삶이면 그냥 하는 것도 제법 괜찮지 않나.
이 두 작가분의 글은 브런치 나우에서 글을 읽다 우연히 보게 됐다. 지난 세월의 어둠과 잠깐의 반짝임을 통해 꿋꿋이 세월을 보내오신 것이 또 닮았다. 브런치북의 첫 화로 들어가 글을 읽어갔다. 작가님의 글에서 제대로 꺼내기 힘든 아픔들이 읽힌다. 그런 삶들 속에서도 잠시나마 반짝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래서 더 잘 읽고 싶어졌다. 삶을 꺼내어 준 작가님들의 글이 조금 더 반짝였으면 했다. 그래서 댓글을 달았다. 일부러 빛내기 위해서 다는 댓글은 아니지만 잠시나마 우리는 같은 걸 느끼고 공감한다. 그러면서 나도 조금의 응원을 받아간다.
그러면서 느낀 건 SNS로 가볍게 일상을 나누기 싫어했던 게 아니라, 어둠이 있더라도 잠깐의 반짝임이 있는 글, 우리의 이야기를 누구라도 진정성 있게 들어주길 원했던 것 같다. 브런치의 어디선가 본 글이 생각났다. 브런치에는 SNS에서의 화려한 삶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어두운 면을 내비친다고. 그래서 그게 브런치의 매력이라는 글, 이제야 공감이 간다. 그래도 어두운 글이라도 댓글이 모여 반짝거리면 은하수처럼 반짝거리는 글이 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