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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묵 Jan 24. 2023

무제(無題)의 제(祭)

선생, 무제(無題)의 제(祭)를 올립니다


곶감의 굵은 씨알은 아이가 양손으로 들어도 꽤나 버거운 듯 보여 기쁩니다

그러고선 이런 과장으로 나를 설득하는 일이 매 년 반복됨에 참담함을 느낍니다

사랑하는 이의 이름이 아이에게 비문으로 바뀌는 과정을 아시는지요


선생, 나는 사랑을 모릅니다


다만 아이가 사랑하던 이름이 아이만 못 읽는 비문으로 바뀌어 가는 것에서도 사랑을 찾으려는 못난이입니다

곶감에 번진 침은 곧 제 손에도 줄줄이 흐르겠지요

그것에도 나는 사랑이라 이름 붙이며 조금의 자조를 행합니다


선생, 나는 결국 무뎌집니다


생 이후의 생은 고뇌로도 알 길이 없다지요

그저 비문에서의 살풋한 곶감 내음을 맡으며 홀로 진혼곡을 읊조립니다

죽은 자를 위해 읊조린 노래는 산 자의 박동을 이다지도 움트게 하는 것인지요

나는 무뎌진다는 말로는 무뎌지지 못하는 그런 멍청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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