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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묵 Mar 23. 2023

하루애

하루를 좋아한다는 건

잘 사는 게 최고의 글쓰기 준비다.

 저 짧은 문장을 쓰기 위해 작가는 얼마나 궁리를 해야 했을까 싶다. 온전히 내 문장이었으면 좋겠다만 아쉽게도 작가수업이라는 책에서의 어느 구절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글, 잘 쓴 글을 쓸 수 있을까 싶어 도서관에서 호기롭게 빌려든 책인데 저 문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글쓰기에 대한 기술적 이론, 방법 등의 내용보다 저 짧은 구절만 겨우 온전히 내 마음에 안착했다. 그런 걸 보면 어릴 적 패기롭게 사랑으로 세상을 보겠다던 외곬이 아직 남은 것 같아 조금 뻘쭘하다. 생활양식은 옛 적이나 다를 것 없이 소박한데, 사랑만 줄어든 것 같아 더 민망하다.


 사랑이 조금 줄어서든 어쨌든 생활과 마음의 균형이 그럭저럭 잘 맞는 요즘,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수시로 든다. 수수한 일상은 적어도 나에겐 더할 나위 없다고 느껴진다. 가벼운 출근시간의 발걸음, 동료들과 나누는 소소한 사담, 갓 나온 달래로 만든 된장찌개를 만들어 먹곤, 후식으로 맛볼 차와 책을 고르는 여유까지 모두 말이다. 이렇게 하루를 줄여놓으니 단출하게 차려진 밥상이 떠 오른다. 쌀밥과 나물 두어 개에 시래깃국 정도로 뭘 먹을지 고민 없이 푹푹 퍼먹는 그런 밥상.


 이렇다 보니 어쩔 땐 글을 쓰면서도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아도 나는 행복할 수 있지 않은가라는 물렁한 생각마저 들곤 한다. 물론, 글을 쓰다 보면 아직 여물지 않은 내 글과 생각이 호되게 나를 야단치는 것 같긴 하다. 다른 사람에겐 곰살맞게 굴더라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잘 생각하라는 엄한 선생님이 옆에 있는 기분이다. 별생각 없이 흘려보내는 하루들이 네가 그토록 원했고 그리워할 하루였음을 잊지 말라고 꾸짖는다. 꾸짖으면서도 특별한 하루만 기억에 두지 말고 하루를 특별하게 기억하라며 타이른다.


골목길을 지나다 찍은 목련, 집과 잘 어울린단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매일같이 지나는 출근길 골목길에서 활짝 핀 목련을 보았다. 발걸음은 가볍지만 큰 대가리는 무거워 매 번 고개는 푹 숙인 채 골목길을 걷는데, 목련이 있단 걸 알게 된 이후로는 곧게 허리를 펴고 눈에 꽃들을 담는다. 발걸음도 조금은 늦추고 잠시 여유를 더 즐긴다. 20대였다면 거의 모든 상황에 맞는 노래 소절이 귓가에서 자동으로 재생됐을 텐데, 나이를 먹으니 시가 떠오른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그 꽃>, 고은


 가볍지만 생애의 짧은 순간을 사랑하기엔 적절히 어울리는 듯한 기분에 출근길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워진다. 그러다 의자에 앉아 잠깐 눈을 감고 과거에 목련을 본 게 언제인지를 떠올려 봤다. 수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구체적인 상황은 채 기억나질 않았다. 수많은 목련들이 컴컴한 어둠 속에서 시선이 닿아주길 얼마쯤 바랐을까. 이제는 지나버린 시절에 대한 아쉬움과 씁쓸함이 가벼운 마음을 비집고 올라온다. 쓴 물을 삼키듯 생각을 누르고 시들을 떠올렸다. 마땅히 생각나는 시가 없어 아쉬워하는 차에 동료가 보내준 글이 생각나서 재빨리 메신저를 열었다.


생애 한 때 자신이 캄캄한 암흑 속에 매장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어둠 속을 전력질주해도 빛이 보이지 않을 때가, 그러나 사실 그때 우리는 어둠의 층에 매장당한 것이 아니라 파종된 것이다.

청각과 후각을 키우고 저 밑바닥으로 뿌리를 내려 계절이 되었을 때 꽃을 피우고 삶에 열릴 수 있도록 세상이 자신을 매장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파종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매장이 아닌 파종으로 받아들인다면 불행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매장과 파종>, 류시화


 정작 공유해 준 동료에겐 우물거리며 좋다는 감상 정도밖에 못 전했다. 나는 시에 온몸을 던져야 겨우 맛보고 이해하는 수준이라 바로 감상을 전할 순 없었다. 불현듯 떠오른 이 시를 머리에 집어넣고, 의자에 우묵하니 나를 말아 넣으며 시를 곱씹었다.


 그랬던가, 나는 조금은 가볍고 물렁해 보이는 이 일상을 맺기 위해 기나긴 파종을 끝내고 흙을 비집어 고개를 드는 것이었던가. 미처 시선이 못 간 수많은 목련들은 지금을 위해 파종되었던 것인가. 여리게만 보이던 하루는 파종을 끝낸 새싹의 생살이었나. 지난 불행은 새로운 이야기들의 시작이 되는 것인가.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불행의 파종으로 피어나고 있는 물렁한 일상들이 새삼 다시 눈에 들어왔다. 일상을 좋아한다는 것은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물렁해 보이던 일상이 단단한 씨앗으로부터 피어나는 것임에 안도했다. 하루, 하루를 좋아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그렇기에 늘 노력해서 얻어야 한다.


오늘도 그런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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