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으로 기다리게 만드는 공간의 매력
얼마전에 수년만에 용인 에버랜드를 다녀왔다. 큰 아들이 유모차를 갓 벗어나서 두 다리로 우뚝 서서 걷기를 시작할 때 온 이후에 온 것이니 거의 10년만에 왔다. 당연히 놀이공원에 가기 전부터 '아빠!OO놀이기구 타요! 그리고, 꼭 OO 먼저 타요!'라고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애들에게 내색은 안 했지만, 나 역시도 놀이기구를 탄다는 기대감에 나 역시도 설레였다. 큰 맘먹고 나는 연차를 내고, 애들은 체험학습 계획서까지 제출하면서 평일에 갔다. 그러나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생각했던 것 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인기있는 놀이기구는 기본 1시간을 기다리면서 타야 하기도 했다. 하물며 놀이공원 운영시간이 임박해가는 저녁 시간에도 불야성이었다. '당연히 저녁 시간이 되면 T익스프레스에는 사람이 별로 없겠지'하는 자신감에 있던 나는 당혹스러웠다. 가장 기대했던 이 놀이기구 역시도 역시나 1시간을 기다리며 타야 했다. 하지만 약 3분 남짓의 짜릿함은 60분이라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상해 주기에 충분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주말에는 놀이이구 하나 타는데, 2~3시간을 기다려야 할 텐데 사람들을 기다릴 수 있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말이다. 평일에 왔기에 그나마 1시간 남짓의 기다림을 주었으나, 주말에는 애초에 주차장을 들어설 때부터 기다림이 시작되었을 것이기에 말이다. 이러한 기다림을 알고서도 사람들은 감뇌하며 잠깐의 기쁨을 위하여 기꺼이 기다린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그 이유는 '기대감'이라고 생각한다. 힘들게 기다리지만 그 끝에는 내가 원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다림을 허용케 하는 공간은 너무나도 많다. 간단한 예로 사람들은 맛집을 찾아 다닌다. 매일 빈 속으로 출근하여 오전 시간을 버틴 당신에게 주어지는 점심시간! 이 한정된 시간에 궂이 맛집을 찾아가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만족하며 점심을 먹는다. 바로 옆집도 똑같은 메뉴를 판매하더라도 내가 가고픈 맛집의 긴 행렬에 기꺼이 합류한다.
그렇다면, '기대감으로 기다리게 하는 공간'은 무엇일까?
가수 이상우가 부른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이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저기 보이는 노란찻집
오늘은 그녈 세번째 만나는 날
마음은 그 곳을 달려가고 있지만
가슴이 떨려오네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전 가슴 설레는 심정을 디테일하게 표현한 노래 가사로 큰 인기를 끌었었다. 기다리게 만드는 공간의 이유는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바로 '설레임'이다. 다들 다양한 설레는 감정을 느껴봤을 것이다. 놀이기구를 기다리면서 탑승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순간, 긴 줄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게 하는 맛집의 환상적인 음식은 그 공간만이 갖고 있는 매력적 요소이다.
그렇다면, 가슴 떨리는 경험이 왜 중요할까? 인문지리학자 인푸 투안의 저서 <공간과 장소>에 이러한 정의가 나온다. '공간+경험=장소'가 된다는 것이다. 공간은 내가 갈 수 있는 다양한 오프라인 공간 뿐만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하는 온라인적 공간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하지만, 내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거나 이를 기대하게 만드는 공간은 특별하다. 이때 나만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래야만이 오랜 기다림을 즐거움으로 바꿔줄 수 있게 만든다.
생떽쥐베리의 책 <어린왕자>에는 주인공 어린왕자가 길들여지지 않은 여우와 나누는 인상적인 대화가 있다.
(어린왕자)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여우)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야?"
(어린왕자) "관계를 맺는다고?"
(여우) "내게 넌 수십 만의 아이들과 같은 어린아이일 뿐이야. 난 네가 필요하지 않다고. 너 역시 내가 필요하지 않아. 너에게는 내가 수십만의 여우들과 같은 여우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될거야.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가 될 거야. 나는 너한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거야"
이렇듯이 우리엑 수많은 공간중에서 의미가 있고, 관계를 맺게 되는 공간은 그것만의 특별한 의미가 있어야 한다. 공간은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어야 고객과의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다.
그 의미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그 공간만이 가지고 있는 컨텐츠이다. 쉽게 말하면, 극장으로 따지면 신작 영화이고, 음식점으로 따지면 대표 메뉴이고, 놀이공원으로 따지면 동물이나 놀이기구가 되겠다. 컨텐츠가 주는 즐거움은 공간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살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이는 마케팅적 관점에서의 푸쉬전략(Push)이 아닌 풀전략(Pull)이다. 컨텐츠를 경험하고 이를 소비함으로서 느끼는 즐거움은 강제적이라기 보다는 고객이 스스로 행동을 하도록 유발한다. 백화점을 포함한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고객을 불러들이는 신규 브랜드를 발굴해서 입점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브랜드 자체가 컨텐츠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 공간에서만이 누릴 수 있는 공간적 요소이다. 공간도 하나의 컨텐츠로 볼 수도 있으나, 나는 이를 좀 구분해서 판단한다. 컨텐츠가 소프트웨어적인 요소라면, 공간적 요소는 하드웨어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컨텐츠는 내가 경험하고 소비할 수 있는 요소라면, 공간적 요소는 그 자체로의 경험에 설레게 된다. 우리가 백두산 천지의 웅장함이나 유럽 대성당의 화려한 건축물을 보면서, 이를 소비하려 하지는 않지만 감동과 뭉클함을 느끼게 된다. 단지 그 공간이 주는 경험적 요소가 전달하는 느낌에 반해 그 곳은 나만의 장소가 되어 버린다.
고객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오프라인으로 오랜 전통의 빵집인 「태극당」을 들 수 있다. 3대째 이어오는 오랜 전통만으로 이곳으로 사람들이 계속해서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이곳은 오랜 전통의 베스트셀러의 빵들이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할아버지 때부터 입맛을 사로잡아 온 그 맛을 장인 정신으로 담담하게 지켜오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 오면 다들 쟁반 한가득 빵들을 담아서 계산대 앞에 선다. 이 빵이야말로 컨텐츠이다. 그리고 오랜 전통 속에 이어온 태극당이라는 하드웨어이다. 사람들은 이곳에 오면 마치 관광지에 온 것처럼 건물 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들어와서 내부 전경을 환하게 웃으며 찍는다. 어차피 빵집은 각자의 집 근처에도 있는데 말이다. 오래된 듯 하면서도 세련된 인테리어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 인테리어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결국 이러한 요소들로 인하여 사람들이 기다리게 만드는 장소가 되었다.
우리의 시간은 매우 한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기다리게 만드는 공간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루한 공간은 죽고, 설레는 공간은 산다"
우리가 설레는 공간은 어디인가? 그 수많은 공간 중에서 관계를 맺는 공간은 어디인가? 나의 소중한 시간을 할애함에도 절대 아깝지 않고 흐뭇해지는 공간은 어디인가? 그리고, 당신이 책임지고 담당하는 공간은 역시 설레는 공간인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