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흐드러지게 피는 꽃들을 좋아한다. 꽃가게에 가서는 볼 수 없다. 묘목을 사서 심는다고 바로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잘 큰 나무만 풍성한 꽃을 피운다. 매화가 그렇고 복사꽃이 그렇고 벚꽃도 그러하다. 이런 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 언덕을 가득 메운 산기슭은 봄이면 말 그대로 꽃 천지가 된다. 바람이 불어 흩날리는 꽃비는 또 어떤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눈처럼 쏟아지는 꽃잎들은 인간 세상을 잊게 할 만큼 아름답다.
이런 환상적인 경험은 요즘 사람들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꿈속의 이상향을 뜻하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는 말은 복사꽃이 활짝 핀 곳을 말한다. 도연명은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이렇게 적고 있다.
절벽을 따라 수백 보를 걸었다. 그 동안 복숭아나무 뿐, 다른 나무는 없었다. 향기로운 풀은 신선하고 아름다웠으며, 떨어지는 꽃잎들이 어지럽게 날렸다.(夾岸數百步 中無雜樹 芳草鮮美 落英繽紛)
이백의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은 자연 속의 아름다운 세상을 이렇게 표현한다.
복숭아꽃 물 따라 아득히 흘러가니, 이곳은 별천지, 인간 세상이 아니라네.(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안견이 그린 우리나라 최고 걸작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또 어떤가. 이 그림은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도원을 비단에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다. 신숙주는 이 그림을 보고 이렇게 찬문을 썼다.
셀 수 없는 싱싱한 복숭아나무가 비단에 수놓은 듯 펼쳐져 있고, 신선의 바람이 멀리부터 고운 안개를 불어 보내네.(萬樹夭桃錦繡堆 仙風吹送綵霞來)
나도 정원에 꽃비 내리는 나무를 가지고 싶었다. 옛 선비들도 따뜻한 봄바람과 꽃비 속에서 속세를 잊는 황홀함을 느꼈다. 나무 한 그루로 그들이 적어 놓은 것 같은 환상의 세계를 만들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아름답게 꽃잎이 날리는 봄을 즐기고 싶었다. 주택을 사서 이사하기로 한 그 순간, 바로 벚나무를 심기로 결심했다.
의미가 있는 나무이길 바랐다. 혼자 사다 심어도 그만이겠지만, 더 뜻깊은 이야기가 담겼으면 했다. 가족처럼 지내는 친구들이 있다. 이사를 들어간다고 하자 집들이 선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벚나무를 사달라 했다.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심고 나무가 자라는 것을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모두 너무 기뻐했다. 친구들이 외곽 묘목 시장에 가서 튼실한 놈으로 직접 골라 왔다. 심는 그 순간부터 뿌듯함이 차올랐다.
애정을 듬뿍 담아 보살폈다. 지지대도 세우고 비료도 아낌없이 주며 흙이 마를까 물도 열심히 줬다. 나무를 제대로 키우지 못 했던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단독주택에 전세를 살았던 적이 있었다. 내 집이 아니다 보니 정원을 마음껏 가꿀 수 없었다. 맘대로 커다란 나무를 심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담 옆 빈터에 회초리보다 조금 굵은 매화 한 그루, 벚나무 두 그루를 사다 심었었다. 제대로 된 묘목이 아니었던지 벚나무들은 잎 한 번 내지 못하고 시들었다. 이사를 나온 후 그 근처에 갈 일이 생겨 담 너머를 들여다보았다. 매화나무는 관리가 안 되어 가늘게 삐죽 자랐을 뿐 볼품이 없었다. 우리 집 벚나무를 그렇게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좋은 묘목을 심은 만큼 풍성한 나무로 만들고 싶었다.
아무래도 묘목이라 처음에는 왜소했다. 나무를 심은 다음 해, 조촐하게 꽃이 폈다. 수형을 예쁘게 잡기 위해 곁가지를 잘라낸 상태여서 더 그렇게 보였다. 손에 꼽을 만큼 수수하게 꽃이 달렸다. 그래도 좋았다. ‘이 정도가 어디인가. 살아 있음 됐다.’ 하지만 웬걸, 벚나무는 해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작년의 그 나무가 맞나 싶을 만큼 성장했다. 앙상했던 가지는 어른 팔뚝보다 굵어졌다. 거기에 다시 건강한 가지들이 뻗어 나가고 촘촘히 꽃망울이 맺혔다. 연둣빛 자루에 자그마한 분홍 구슬이 달린 응원봉 모양이다. 열성팬들이 모여 봄이 오심을 환영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날이 따뜻해지면 눈부시게 꽃이 핀다. 처음엔 팝콘 몇 개 달려있던 것 같던 나무가 한해 자라 커다란 꽃다발같이 되었다. 그다음 해엔 집 바깥 담장을 다 덮을 만큼 꽃이 맺혔다. 이젠 든든한 성목으로 그 자태를 한껏 뽐낼 수 있게 되었다.
바람이 불면 아름다운 꽃비가 내린다. 눈보다 하얗게 파란 하늘을 덮는다. 집 바로 뒤 야산에도 벚나무가 몇 그루 있다. 몇 십 년을 살았는지 모를 큰 나무다. 우리 집에 벚꽃이 필 때면 그 나무들에도 함께 꽃이 맺힌다. 꽃비가 내릴 때 그들이 도와준다. 멀리서 날아 온 꽃잎에 정원의 벚꽃이 더해져 풍성하게 날아다닌다. 선선한 바람에 처마 끝 풍경이 딸랑딸랑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내가 시를 짓는 선비였다면 저절로 글이 한 줄 읊어질 멋진 순간이다. 오랫동안 나무에 쌓인 태양의 생명력이 꽃비로 내리는 순간이다.
날이 좋을 때, 친구들과 정원에서 술 한 잔 기울이며 꽃비를 본다. 직접 나무를 심었던 순간을 회상하며 저절로 흥이 오른다. 꽃놀이로 이름난 곳이 아니어도 충분히 좋다. 머리 위에 벚나무 그늘이 드리울 만큼은 아니다. 그래도 조용한 곳에서 풍성한 자연을 곁에 두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 따뜻한 볕, 싱그러운 바람, 간간이 날리는 꽃비, 그리고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 이만한 호사가 어디 있겠는가. 이 벚나무는 사람의 마음으로 심었고 자연의 마음으로 자라났다. 그 속에서 무릉도원을 느낀다면, 취기가 한껏 오른 주사인 걸까.
다음은 열심히 잔디와 뿌리로 전쟁을 벌이고, 예쁜 꽃도 피우는 빈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음주 수요일(4월15일)에 다시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