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카 – 뿌리 전쟁

by 묵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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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란 무엇인가?’


정원을 가꾸다 보면 수없이 많은 잡초를 만난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 고개를 내미는 풀들, 뽑고 또 뽑아도 끝이 없다. 마음 깊이 지긋지긋해진다. 하지만, 잡초라고 해도 자세히 쳐다보면 귀여운 구석이 있다. 수수하지만 나름 예쁜 꽃을 피운다. 휑하니 허한 구석에 뜻하지 않은 파릇함을 선물하기도 한다. 그냥 잡스런 풀이라고 싸잡아서 매도하기엔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저런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잡초란 무엇이란 말인가.


‘재배 목적이 아닌 곳에 자라는 초본.’ 이것이 잡초의 정의란다. 조경 전문 서적에서 찾아낸 말이다.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저 말을 쉽게 풀면 ‘내가 원하지 않는 곳에 자라는 풀’이란 뜻이다. 그렇다. 잡초인지 아닌지는 순전히 인간이 판단한다는 말이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벼를 재배하는 논에 갑자기 옥수수가 자라면 그게 잡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보기 좋게 꾸며놓은 수선화밭 한가운데 상추가 자라면 뽑아내지 않고선 못 배기지 않겠는가. 세상에 날 때부터 잡초인 것은 없다는 뜻이다. 인간이 보고 필요가 없다 싶으면 그 순간 잡초가 된다. 이 얼마나 이기적인 단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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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어떤 생명체를 편애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장미에게나 길거리 잡초에게나 자연은 저마다 살아남을 생명의 힘을 준다. 꽃이 아름다운 장미는 벌 나비를 유혹해 씨앗을 맺을 것이다. 바위틈에 돋아나는 잡초는 강한 뿌리의 힘으로 생을 이어갈 것이다. 장미가 바위 위에서 자랄 수 없다. 잡초가 꽃으로 유혹하긴 어렵다. 어느 하나가 자연의 혜택을 더 많이 받는 것이 아니다. 모두 나름의 힘으로 생존의 투쟁을 거쳐 환경을 이겨낼 뿐이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식물과 동물들은 기나긴 지구의 역사 위에서 스스로를 지켜 살아남은 존재들이다. 자신의 힘을 가지지 못한 것들은 도태되어 없어졌다. 얼마나 강하고 거룩한 생명들인가. 거기에는 우열이 있을 수 없다. 단지 인간의 호오만 존재할 뿐.


풀들을 찬찬히 지켜보면 그 왕성한 생명력에 놀라게 된다. 뭐 하나 해준 것 없는데 혼자서 쑥쑥 자라고 번진다. 돌 틈이건 담장 벽돌 사이 건 손톱만큼이라도 흙이 있는 곳이면 풀이 자란다. 여름이 시작되고 장마가 오면 무서울 정도로 번진다. 며칠만 그냥 둬도 모든 곳을 점령할 정도로 자라난다. 어디서 씨가 날아온 것인지, 원래 뿌리가 거기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명력이 강해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마냥 반길 수 없는 인간은 풀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 찌는 더위 속에서 하루 종일 허리가 빠지도록 뽑아내야 한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문득 뒤돌아보면 또 새 잡초가 보인다. 이렇게 가을이 올 때까지 땀범벅이 되도록 잡초와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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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풀 중에 이런 끈질긴 힘이 가장 센 놈은 잔디가 아닐까 싶다. 잔디는 씨를 맺지 않아도 슬금슬금 번식한다. 포복경이라고 부르는 뾰족한 대롱 같은 팔을 땅 위로 슬그머니 뻗는다. 그리고 어디든 흙이 있는 곳에 닿으면 거기에 뿌리를 내고 자리를 잡는다. 한 방향으로만 뻗는 게 아니다. 사방팔방 여력이 있는 대로 영역을 넓힌다. 가까이 흙이 없으면 닿을 때까지 뻗는다. 그렇게 온통 잔디밭이 된다. 이렇게나 잘 자라니 정원이나 골프장에 까는 게 아닐까 싶다.


문제는, 잔디의 힘이 너무 커 내 맘대로 조절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뾰족한 팔을 들이밀어서 꽃밭이든 텃밭이든 가리지 않고 파고든다. 그 순간 잔디는 가장 무서운 잡초가 된다. 어디서 뻗은 것인지 모를 잔디가 여기저기 나온다. 아무리 파내고 뽑아내도 소용없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해가 쨍한 여름이면 도저히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상추 옆에도 튤립 뿌리에도 잔디가 보인다. 그냥 두면 온 천지가 잔디밭이 될 것 같은 공포가 밀려온다. ‘재배 목적이 아닌 곳에 자라는 가장 힘센 초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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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됐다. 빽빽하게 자리 잡은 잔디밭은 좋지만, 다른 곳으로 번지는 일은 막아야 했다. 내 힘만으로 제어되지 않는다면 기술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인공물로 벽을 치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화단 경계면 빈카가 자라는 곳에 잔디가 잘 넘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다. ‘유레카! 바로 저거다!’ 빈카는 그냥 보기엔 조촐히 자라는 귀여운 풀이다. 조그만 혓바닥 모양의 반들반들한 잎을 가진다. 꽃도 보라색으로 예쁘게 판다. 처음엔 저런 풀이 다 있네 하며 신기해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 녀석들한테 잔디를 이길 힘이 보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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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하게 자란 빈카들을 포기 나눔 해서 심기 시작했다. 옮겨 놓은 빈카는 덩굴 같은 줄기를 바닥으로 뻗어 번져갔다. 여름이 되면 무성해진 빈카를 다시 나눠서 잔디밭 경계가 흐린 곳에 심기를 여러 해 반복했다. 그리고 봄에 들어갈 때면 빈카의 잎들을 모두 잘라준다. 겨울이 지나도 파랗게 남아있긴 하다. 하지만 몇 년 키워보니 남아있던 잎들은 나중에 노랗게 마르고 흙에서 새잎이 났다. 묵은 잎들은 필요가 없는 셈이다. 또, 빈카가 잔디를 견디려면 뿌리가 잘 뻗어야 한다. 풀들은 잎을 잘라주면 뿌리 숱이 많아진다. 더 많은 곳에서 양분을 가져와 살아남기 위함이다. 새 뿌리들이 흙 안에서 무엇을 가져온 것인지 너무도 앙증맞은 새싹들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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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는 않지만 식물들도 치열하게 생존을 다툰다. 풀이든 나무든 뿌리가 자리 잡아야 잎도 내고 꽃도 피울 수 있다. 크게 자라려면 뿌리도 깊게 들어가야 한다. 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게 물에 비쳐 위아래로 대칭이 된 모습을 그려보자. 아래쪽으로 비친 만큼이 뿌리의 크기라고 한다. 잔디도 정리하려 파보면 그 뿌리의 깊이나 무성함에 놀란다. 악착같이 흙을 붙들고 있어서 잔디를 파내기도 어렵고, 그 무게가 엄청나진다. 반대로 말라죽은 나무들을 뽑아보면 대개 뿌리에 힘이 없다. 식물들은 뿌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흙을 온전히 차지하기 위해 옆에 있는 식물들과 끊임없이 전쟁을 벌인다. 저놈이 내 뿌리를 침범하는 순간, 내 생명의 힘이 약해진다.


빈카도 잔디를 이기기 위해 힘을 쓰고 있을 것이다. 잔디는 정원의 얼굴이지만, 어느 순간 가장 무서운 잡초로 돌변하는 것도 모두 자연의 뜻이다. 잔디가 경계선을 넘어 잡초가 되지 않게 지켜주는 것이 빈카다. 어쩌면 나의 이기심이 발동된 결과물이겠지만, 억지로 파내는 것보다 훨씬 자연적이지 않은가. 인간의 이기심을 자연의 생명체가 보호하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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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빈카는 뿌리를 잘 내려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잔디밭과 화단 사이를 깔끔하게 가르며 내 정원을 단정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봄이 되면 귀여운 보라색 꽃을 탐스럽게 보여준다. 자그마한 바람개비 같은 꽃들이 잔디밭을 둘러싼다. 가장 힘센 이웃 잔디와 힘겹게 뿌리 전쟁을 벌이고 있겠지만, 내 눈엔 너무도 평화로워 보인다. 다 내가 인간이기 때문일 터. 그래도 자연이 준 이 평화가 좋기만 하다.





다음주는 아름다운 꽃으로 놀라움을 주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해 준 서부해당화 이야기입니다. 4월22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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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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