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은 재능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신호다
AI가 많은 일을 더 빠르게 처리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한 가지 영역만큼은 끝내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 바로 몰입이다. 몰입은 단순한 흥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좋아서 하는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개인의 작동 방식과 재능 구조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신호다. 나는 오랜 교직 생활 동안 성적과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몰입의 차이가 미래 방향을 결정하는 장면을 수없이 보아왔다.
몰입은 억지로 만들어낼 수 없고, 강요한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다. 몰입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어떤 활동 앞에서는 시간이 빨리 흐르고, 다른 활동 앞에서는 단 10분조차 버티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의 뇌는 ‘재능이 있는 영역’에서는 에너지를 덜 쓰고 더 빠르게 학습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즉, 몰입이 일어나는 순간은 단순히 재미있는 순간이 아니라 내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 사람인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다. AI는 많은 것을 학습할 수 있지만, ‘왜 그 사람이 그 일에 빠져드는가’라는 내적 동기를 이해할 수 없다.
학생들에게 진로를 지도할 때 나는 늘 '너는 무엇을 잘하니?' 보다 '무엇을 오래 해본 적이 있니?'를 먼저 묻는다. 오래 한다는 것은 귀찮음과 피로를 넘어서는 힘이 있다는 뜻이며, 그 힘은 흥미가 아니라 내재된 재능의 지속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몰입이 잦은 영역에는 반복이 생기고, 반복은 자연스럽게 실력을 만든다. 그래서 몰입은 미래 진로의 방향뿐 아니라, 구체적인 성장 속도와 직업적 지속성까지 예측하게 해주는 척도다.
AI가 점점 더 많은 작업을 대신하더라도, 몰입은 대체할 수 없다. 기계는 매우 잘하지만, 인간은 몰입을 통해 ‘왜 해야 하는지’의 의미를 찾아낸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몰입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성장은 구조적으로 다르게 나타난다. 몰입이 있는 사람은 일의 본질을 이해하고,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며, 개선점을 빠르게 찾아낸다. 이것이 바로 AI 시대에도 인간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몰입은 진로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지표가 된다. 학생들은 흔히 '저는 이것도 좋아하고 저것도 좋아해요'라고 말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몰입의 질이 다르다. 어떤 학생은 결과를 만드는 과정에 몰입하고, 어떤 학생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 몰입하며, 또 어떤 학생은 사람들과 연결될 때 몰입한다. 흥미가 비슷해 보이지만, 몰입이 발생하는 순간은 모두 다르며, 이 차이는 결국 각자의 업(Work)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AI 시대의 진로에서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잘하는지’보다 무엇에 몰입하는가, 그리고 그 몰입이 어떤 방식으로 반복되는가를 관찰하는 일이다. 몰입은 결과보다 과정을 말해주고, 기술보다 태도를 보여주며, 흥미보다 깊은 내적 구조를 드러낸다. 결국 AI도 이해할 수 없는 나의 몰입이야말로, 미래의 길을 스스로 열어가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