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하나가 세계를 다르게 보이게 하는 방식
예를 들어 로마의 ‘트레비 분수’라는 이름을 떠올려봅니다. 관광지로만 알려진 이 화려한 분수의 이름은 사실 아주 소박합니다. 트레비(Trevi)는 ‘삼거리(Three Ways)’이라는 뜻으로, 처음에는 사람들이 길을 찾고 물을 얻기 위해 모이던 작은 장소에 붙은 이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천안삼거리 호두과자’처럼, 결국 ‘삼거리에 있던 가게에서 팔던 과자’라는 단순한 출발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똑같이 단순한 이름도 언어가 달라지면 전혀 다른 느낌을 줍니다. ‘삼거리’이라고 들으면 평범하지만, 이탈리아어로 ‘트레비’라고 들리는 순간 우리 안에서는 낯섦이 생기고, 그 낯섦은 오히려 가보고 싶은 장소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언어 하나가 사물에 새로운 이미지와 감정을 입히는 순간입니다.
폭스바겐(Volkswagen)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이지만, 그 이름의 시작은 ‘국민을 위한 차(people’s car)’라는 단순한 바람이었습니다. 이름 하나에 한 시대의 경제와 기술, 정치와 이상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자동차 한 대가 가진 이야기를 이름만으로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름의 기원을 이해하면 사물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맥락을 가진 존재가 됩니다. 이름은 사물이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어떤 생각 속에서 탄생했는지를 알려주는 가장 짧은 역사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다시 읽는 일은 지식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일에 가깝습니다.
요즘은 이름과 마크를 묶어 ‘브랜딩’이라고 부릅니다. 서양은 이름 자체를 직관적으로 짓는 경향이 강하고, 동양은 상징을 담아 해석을 필요로 하는 이름을 많이 사용해 왔습니다. 상징은 깊이를 주지만 설명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직관의 시대에 설명을 필요로 하는 이름은 때로 속도와 어긋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렵지 않은 이해, 쉽게 열리는 아하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누구나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이름, 단어, 이야기. 이름 하나를 다시 읽는 것만으로 사고가 열리고, 복잡한 설명 없이도 세계를 가볍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 아하는 어렵게 만드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익숙한 것을 다시 읽어내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름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사물이 처음 세상에 발을 디딘 이야기입니다. 이름을 이해하는 순간, 익숙한 사물은 낯설게 보이고, 그 낯섦 속에서 새로운 생각이 태어납니다. 아하는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