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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풀 Jan 12. 2023

아이는 놀이학교에 나는 상담센터에

화가 많은 엄마의 내면아이 만나기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일 중 하나가 아이 앞에서 우는 것이다. 결코 해선 안 되는 엄마의 행동 목록에 항상 들어있지만, 울 수밖에 없는 지점에서 나는 우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울어버린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몇 번은 나를 뒤에서 안아 주었고, 또 몇 번은 내 눈을 오래 쳐다보다 이내 서러운 표정이 되곤 했다. 그러곤 늘 하는 말이 있다.


엄마, 한 번만 웃어줘.


뜨거운 불안에 휩싸인 채 데이지 않으려고 택한 말. 그 말을 들으면 조금 슬프지만, 희망적이기도 하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불안을 헤쳐나갈 사람으로 자랄 거란 희망. 불안에 불안을 덧씌워 꽁꽁 감추는 나를 대물림하진 않을 거라고.




아이가 자라나면서 내 속에 헝클어진 퍼즐도 맞춰지기 시작했다. 홀로 남아 울고 있는 ‘내면 아이’를 만나러 가야 할 때가 온 것일까. 더는 늦으면 안 된다는 직감이 느닷없이 몰아쳐 마구 나를 두드렸다. 불안과 슬픔을 숨긴 채 멀쩡한 척 살던 나에게 안녕을 고해야 한다. 이 모든 건 유난히 예민하다고 여겼던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부터였다.


화가… 많다고요? 제가요?
맞아요. 그런 타입으로 나왔어요.
에이, 그럴 리가요. 전 그런 사람 아녜요. 제가 얼마나 화를 안 내고 사는데요.
맞아요. 모든 검사 결과가 물풀 씨를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그리고 어떤 느낌이었냐 물어보면, 자꾸만 생각을 설명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고 있네요.
그게 제가 느낀 거니까요.
아니요. 감정이 없어요. 감정을 느끼는 기능이 오랜 훈련으로 막힌 상태예요.
제가요?
억눌린 자아, 그러니까 물풀 씨 내면에는 아직 어린아이가 울고 있어요. 그 아이에게 다가가 충분히 화를 내게 해 주고, 안아주고, 그래야 뭘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서른다섯 살 가을날이었다. 멀쩡히 걷다가 뭣도 아닌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는 기분이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온종일 불안에 요동치는 심장 박동만 기억난다. 아이가 태어난 지 41개월. 그맘때 아이들이 웬만하면 다 다니는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가정보육에 신념이 남달랐던 것도 아니고, 그저 아이가 ‘유별나게 예민’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또래 거부와 새로운 환경에 대한 공포심이 남달랐다. 아가들의 핫플인 문화센터에선 한 달 넘게 울다가 진이 다 빠졌고, 좋은 곳만 수소문해 들어간 어린이집은 세 군데나 적응에 실패했다. 엄마에도 군대처럼 계급이 있다면, 나는 이등병에도 못 미쳤다. 남들은 직장까지 다니면서 둘이고 셋이고 잘만 키우는데, 시작부터 글렀다. 워킹맘도 아니면서 아이 한 명 키우다가 평생 쓸 '징징이'는 다 갖다 썼다. 패배한 게 분명한데 죽기는 싫은 패잔병이 바로 내 계급이었다.


"어머님, 아이가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아직 준비가 안 됐나 봐요. 어머님만 괜찮으시면 집에 좀 더 데리고 있다가 보내는 건 어떨까요?"


사랑, 그놈의 사랑, 아직도 모르겠을 사랑 녀석, 왜 또 내 발목을 붙잡는 거냐?


밤새워 욕심내 글을 다시 써보려다 좀비가 되어버린 어느 날, 대기 중이었던 놀이학교에서 입학하라는 연락이 왔다. 일반 어린이집은 이미 몇 년째 같이 다니고 있는 아이들이 많아 문 앞에 가기도 두려웠다. 돈이 좀 들더라도 소수만 받는 곳을 찾아야 했다. 제주도엔 놀이학교가 제주시 중심가에 딱 하나 있다. 서귀포에 살던 우리는 여기에 보내기 위해 행정구역을 바꾸어 이사까지 했다. 극성이 아닌 사람이 극성 짓을 하는 데엔 처절한 이유가 있는 법. 예상했던 대로 입학생 중 가장 오랫동안 적응기간을 가져야 했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님, 아직 가시면 안 돼요. 우리 **이는 아직 엄마가 옆에 계셔줘야 할 것 같아요."


놀이학교 10년 차인 베테랑 선생님이 아이를 던지듯이 맡기고 떠나려는 내 옷깃을 붙잡으며 말했다. 나는 아이가 얼마나 힘들지에 대한 걱정보다, 이 유별난 아이에게 붙잡혀 내 인생은 영영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혔다. 실컷 괴로워하다가 마지막 보루라는 심정으로 백만 원이 훌쩍 넘는 상담 프로그램을 덜커덕 결제해 버렸다.


상담사는 자꾸만 나를 과거로 끌고 갔다. 비싼 놀이학교 원비와 상담료 덕이었을까. 평소라면 상상할 수 없는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니 속이 좀 풀렸다. 어느 날 상담사는 잔뜩 긴장한 채 눈물을 참고 있는 아이를 찾아내 불러왔다. 작고 어린 그 아이는 멀쩡한 척 자라 멀쩡한 척하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끓어오르는 말을 누르고 또 누르는 습관, 기분이 어떻든 웃고 보는 얼굴 근육, 정기 행사처럼 영문도 모른 채 터져 나오는 눈물, 모든 건 다 내 탓이라는 정답지 만을 가진 그런. 능숙하게 속내를 감추는 건 오랜 훈련의 결과다. 서른을 훌쩍 넘어서야 에둘러대는 버릇을 고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늘 카페인을 과다 섭취한 것처럼 붕 뜬 기분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스스로 감정을 인지하는 기능이 막혀 버린 상태라는 진단도 받았다. 아무리 찾아 헤매도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은 문장을 써낼 수 없던 건 그 때문이었을까.


아이가 태어나 함께 살며 나를 잃어버릴까 오래도록 전전긍긍했다. 불안은 그대로 아이에게 전달됐다. 숨 넘어가게 울어대 나를 옭아매던 아이는 이제 호기심에 가득 찬 어린이가 됐다. 길어진 팔과 다리로 춤을 추다가 갑자기 세계의 원리를 묻는 식으로 자라남을 과시한다. 세상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며, 태어나기 전 우리는 어디에 존재했는지, 우주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엄청난 걸 고작 나에게 묻는 저 아이의 세계엔 엄마인 내가 가득 들어차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는 점점 저만의 것으로 차오르고 부풀겠지.


오래전 알기를 포기한 것들에 생각이 고인다. 너무 골똘한 나머지 언젠가 손을 뿌리치고 도망쳐버린 어린 나에게까지 다다른다. 세계의 원리를 궁금해 하기를 또래보다 일찍이 포기해 버린, 그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주어야 한다. 많은 용기와 힘이 필요한 일이다. 언저리에 우물쭈물 머물던 것들을 호출한다. 거기에 알 수 없는 한 사람의 세계가 시공간을 넘어 빛을 송출하고 있다. 


어린이가 된 아이와 함께 바라노을




상담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아이는 거짓말처럼 완벽하게 기관에 적응했다. 엄마인 내 불안이 줄자 아이도 더 이상 유별나지 않게 된 걸까? 


"어머님, 사실 **이 보다 엄마가 더 불안해하시는 것 같았어요. 이제 좀 괜찮아 보이시네요. 이제 아이는 걱정 말고 저희한테 맡기고 가시면 돼요."


별별 엄마들을 다 보았을 베테랑 놀이학교 선생님도 내게 합격증(?)을 던져줬다. 패잔병 엄마에게도 살 길이 주어진 것이다. 41개월 간의 강제적 가정보육 종료, 그리고 9시 50분부터 3시 20분까지의 자유!


이제 홀로 남겨져 울고 있는 그 아이를 만날 용기를 내야 할 때다. 혼자인 밤 섧게 흐느끼는 대신 갈라진 지문 밖으로 토해내자 마음먹는다. 좀처럼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있는데도, 우주가 진종일 내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 같아 은근히 기쁘다.



물풀의 첫 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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