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는 동생에게 연락을 했다.
오래갈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인연인데, 2년 3년 해가 가더니 이제 12년째 알고 지내는 사이다. 처음에 심적 거리를 둔 터라 같이 어울리면서도 그리 친한 사이라 느끼지 못했는데, 밤에 문득 전화하여 안부를 묻고싶은 그런 사이가 된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전화를 받으면 받는대로, 받지 않으면 안 받는대로 이렇다 저렇다 하지 않고, 그래, 오늘은 조금 바쁜 모양이네, 아, 타이밍이 안 맞게 전화를 걸었구나, 하고 넘기곤 했다. 서로 사는 게 바빠 연락을 자주 하지 못하지만 종종 안부를 묻고는 하는 그런 사이 말이다.
밤 10시 30분. 왠지 퇴근하고 자기 전에 통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통화음이 5~6번 정도 울려, 안 받으려나 싶을 즈음 "언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요즘의 나답지 않게 자연스럽게 톤이 한껏 올라가 "뭐해~~~" 장난스러운 한 마디를 건넸다.
요즘 연애를 하고싶다는 이야기도 해보고, 갖가지 추억을 이야기하고, 깔깔대며 웃었다. 프리랜서인 내가 '이만 끊어야하지 않을까. 내일 출근할텐데.'싶어 살짝 눈치를 보면, 동생은 도파민 때문에 잠 자기는 글렀다며,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우리는 1시간 56분이나 통화를 했다. 누군가와 이렇게 긴 통화를 한 적이 언제일까. 한 가지 추억을 이야기하면 다른 이야기가 둥실 떠올라 웃음이 터졌고, "왜 웃어?"하면 그 이야기를 끄집어다 이야기해주는 식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문다는 게 이런거구나. 우리는 쉴새없이 이어지는 다양한 추억을 꺼내다가 한참을 즐겁게 이야기나누었다.
우리는 3명이서 다녔는데, 내가 가장 큰언니었다. 한 살, 두 살 터울이어서 나와 가장 막내인 친구는 3살 터울이었다. 자주 보지 않는데다 동갑 친구가 아니다보니 처음에는 꽤나 깍듯했던 말투가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말랑해지는 재미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에 대한 존중을 놓지 않았다. 친하다는 이유로 날카로운 말이나 무례한 농담을 하는 법은 없었다. 아마도 그것이 우리의 오랜 관계의 비결이리라.
한창 이야기를 하다 3년 전, 셋이서 여행을 갔던 이야기를 했다.
당시 나는 일중독이어서, 머릿속에 온통 일 생각 뿐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시간이 아깝다 여기던 때였다. 그런 채로 10년을 넘게 살았다. 누군가가 여행을 가자고 하면 하도 미루고 거절을 해둔 탓에 '이번에도 거절하면 상대의 마음이 많이 상하겠다.' 싶은 즈음에 "그래, 가자!"하고 답하는 식이었다.
빈정이 상해 '그래, 싫으면 마라.' 하고 휙 돌아설법도 한데 이 두 동생은 내게
"이 언니 지금 약속 잡아놔야 돼! 그래야 여행 가!"
하면서 두 달이고 네 달이고 저 미래의 날짜에 약속을 해두곤 했다. 그 마음이 참 고맙다 느꼈다. 두 달 네 달 뒤의 약속을 미리 잡아서라도 나를 보고 싶어하는 그 마음. 처음엔 '왜 그렇게까지?' 마음을 의심을 하기도 하였으나 어느 순간 내 마음에 고마움이 자리한다는 걸 알았다.
3년 전, 우리는 부산 여행을 갔다. 하도 미리 약속을 잡아두어서, 공교롭게도 당시 진행하던 프로젝트의 마감날짜와 겹쳐버렸다. 약속을 취소할까, 가야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가기로 했다. 다만 동생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며 '가면 나는 노트북으로 일을 해야할 것 같아. 나 일할 때는 둘이 놀아도 괜찮겠어?' 하니 또 괜찮단다. 그렇게 우리는 부산에서 만났다.
숙소에서부터 '언제부터 일을 하면 자연스러운 타이밍일까'를 엿보았다. 가는 날이 장 날이라고 여름 소나기가 내렸는데, 동생들이 핫도그를 사오겠다며 둘이 숙소를 나섰다. 나는 그 틈에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였고, 동생들이 돌아왔을 때에는 모른 척 같이 핫도그를 먹었다. 대체로 내향형인 두 친구는 숙소에 머무는 것을 좋아하여서 우리는 숙소에서 회를 시켜먹으며 못하는 술도 몇 잔 했다. 다들 헤롱헤롱하며 졸려할 즈음이 되자, 나는 조금 눈치를 보며 노트북을 켜고 일을 시작했다.
다음날에는 바다를 구경하고, 솥밥을 먹으러 갔다. 프로젝트 마감일이었다. 제출을 해야하는데 아직 확인할 것이 많아서, 나의 마음은 온통 일 생각에 쏠려있었다. 동생들도 그걸 느꼈는지 우리는 솥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도 몰랐다. 밥을 먹으며 막내가 다음 이동할 카페를 찾는데, 자신들의 감성을 채울 예쁜 카페를 찾는 게 아니라 '노트북 충전 가능한 콘센트 많은 카페'를 검색하고 있었다.
막내가 콜롬비아 대륙이라도 발견한 듯이 소리쳤다.
"언니!!! 있어!!! 여기 콘센트 있다!"
그 애는 카페 블로그 후기에 올려진 카페사진을 확대하여, 콘센트가 있는지 확인을 한 모양이었다. 카페가 아닌 콘센트 부분을 잔뜩 확대하며 나에게 기쁜 얼굴로 사진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뭐지, 이 바보같이 착한 애들은. 곧 그 카페로 이동하였는데, 가는 와중에 우산을 잃어버리고 솥밥집에 두고왔다는 걸 알았다. 두 동생은 나보고 "언니 먼저 가 있어! 카페에서 먼저 일 하고 있으면 우리가 우산 가져갈게!" 하였다. 전쟁통에 '너 먼저 안전한 서울에 올라가 있어라.'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을 추리며 카페에 가서 노트북을 폈다. 이토록 민폐를 끼쳐놓고 일조차 제대로 못 하면 그건 너무 미안한 것이었으니까.
감성이고 뭐고 뿔테안경과 쪽진 머리를 묶어올리고 나는 업무에 열중했다. 내가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두 동생은 멀찍이 있는 다른 테이블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을 마무리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데, 기차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 동생은 먼저 서울로 올라갔고, 나는 프로젝트 제출을 마치고서야 기차표를 다시 예매하여 서울로 올라왔다.
참 웃긴 것이, 그 여행에서 우리는 풍경도 맛집도 인생사진도 별로 건진 것이 없다.
그런데 해가 지날수록 그때의 기억이 너무나도 즐겁다. 어제도 전화를 하며 그 이야기를 하는데, 문득 동생이 내게 말했다.
"언니, 나는 그 때 언니한테 참 고마웠다? 그렇게 바쁜데도 우리랑 여행을 가준 거잖아."
나는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완전히 반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행지까지 가서 '노트북 충전 가능한 카페'를 검색하던 그 친구들에게 너무도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그래...? 희한하다. 나는 너희한테 정말 고마웠거든. 우리 내 프로젝트 마감때문에 솥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몰랐잖아. 막내는 노트북 충전 가능한 카페 찾느라 바빴고."
상황을 바라보던 서로 다른 시선. 그 시선에 담긴 다정함을 느꼈다. 미워할 법도 한데, 그런 생각으로 나를 바라보았구나. 덕분에 기억에 남는 풍경도, 맛집도, 인생사진도 없었던 여행에서 우리는 추억을 한아름 가지고 왔다. 엉망진창인 일정 속에서, 바보같을만큼 서로에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면서.
통화를 끊을 무렵,
"우리 다음엔 언제 만날까?"
"우리 왠지 여름 즈음 만날 것 같아."
"그럼, 우리 여름에 만나자!"
"응, 좋아. 여름에 보자."
확실한 날짜도 없이, 장소도 없이,
그러나 분명히 만날 것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우리는 그렇게 통화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