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모든 게 잘 될 것만 같던 평온함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날.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와 나를 집어 삼키는 날. 세상이 흔들리는 날.
지난달 이사갈 집을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불안 루프에 빠져든 적이 있다. 휴대폰을 놓지를 못하고 새벽 2시, 3시까지 집 검색을 계속했다.
미팅을 마치고 이끌리듯 방문했던 양재 오피스텔.
예산보다 가격대가 높은 곳. 그래도 한 번은 보러 가고 싶던 곳이었다. 둘러보면 오히려 욕심이 날까, 망설였는데 근처 미팅을 마치고 차에 타자마자 나도모르게 네비에 그 오피스텔 주소를 쳤다. 즉석으로 방문하니 다른 고객을 먼저 응대하고있던 부동산중개인 아주머니가 "잠깐만 기다릴 수 있죠?" 하셨다.
부동산에 양해를 구하고 근처를 잠깐 둘러보았다. 바로 근처에 강아지를 산책시키기 좋은 산책로가 있고, 내가 문화생활을 즐길거리도 충분하다. 너무 북적이지도 한산하지도 않아 나의 에너지를 적정히 채우고 비우기에 딱인 곳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섣부른 선택이었다. 비용도, 위치도, 조금 앞선 미래의 공간같았다.
밖을 둘러보며 20분 남짓 기다리니 마침 여러 매물이 나온 시기라며 여러 호수를 보여주셨다. 먼저 작은 평수를 보여주시고 그 후에 큰 곳으로 이동했는데, 부동산 중개인 아주머니가 "자, 이제 돈이 얼마나 좋은지 보여줄게요."라며 큰 평수를 보여주셨다. 돈이 있다면 선택권이 넓어지고, 더 나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이겠지. 호수마다 구조가 다르고 가격이 높아질수록 넓은 구조였으나, 집이 넓다고 다 좋은 건 아니었다. 더 중요한 건 에너지였다. 같은 건물 비슷한 구조임에도 집마다 에너지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실제로 집을 둘러보고 오니 집 알아보기에 불이 붙었다. 나는 하루 5~6시간을 집 검색으로 보냈다. 돈을 절약해야 해, 하는 생각이 올라오면 집의 컨디션이 끝도없이 내려갈 수 있었다. 삶의 질을 생각해, 돈은 필요한만큼 벌게 되어 있어, 하는 생각이 올라오면 또 집 컨디션이 쭉 올라갔다.
그러다 불안해졌다. 버는 돈 하나 없이 월세가 높은 곳으로 덜컥 이사가도 괜찮을까. 1년 넘게 일을 쉬었는데, 돈을 어디에서 벌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바람을 쐴 겸 강아지를 데리고 집 근처 공원가를 지나는데, 문득 작년 무렵 이 공원에서 내 전 직장 대표님이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무척 불안했고,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때 대표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00쌤, 상상해 봐."
상상해 봐.
상상해보라는 말.
그 말 안에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무엇이 되고 싶고 어떤 삶을 원하는지, 느끼고 상상해 봐. 자꾸 상상하면, 현실이 되거든. 그때 마치 수압이 강한 호스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들을 단번에 밀어내듯이, 이런저런 잡념들이 쏴아 씻겨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온 몸이 정화되는 순간이었다.
공원가를 지나다가,
문득 그 말이 떠오른 것이다.
상상해 봐.
상상해 봐.
상상해 봐.
무엇이든 현실이 되니까.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하며 부정적인 상상을 계속하고있었는데 단숨에 그런 생각을 잘라냈다.
상상을 하기로 했다.
멋지고 설레고 가슴 뛰는 즐거운 상상을.
현실이 될 미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