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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쓰 Sep 24. 2023

기화펜 러브레터 -1-

민서를 처음 본 날

오늘 나는 짝사랑 상대인 민서에게 고백할 예정이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덜컹거리는 전철 좌석에 앉아있다. 손목시계는 6시임을 알린다. 오늘은 고등학교 졸업식이 열리는 날이기도 하다. 교복을 입는 날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민서는 나와 3년째 친구로 지내고 있다. 내일부터는 서로를 연인이라 부를 수 있을까.     

 

덜컹! 전철이 잠시 심하게 흔들린다. 충격이 잡생각에 빠져있던 나를 깨운다. 주변의 새들도 하늘로 날아간다. 금세 안정을 되찾고 다시 전철은 고요에 잠긴다. 나는 하염없이 새들이 날아간 방향을 바라본다. 그러고 보면 민서를 처음 봤을 때도 저렇게 새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그날을 잠시 회상해 본다.      


입학 첫날, 입학식이 너무 길어진 탓인지, 집중이 되질 않았다. 나는 교장 선생님 말씀을 귓등으로 듣고 하늘을 올려봤다. 새파란 하늘에는 구름이 보기 좋게 걸려있었다. 제비는 그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었다. 어느새 내 눈은 제비를 따라가고 있었다. 시야에서 제비를 놓칠 때 즈음, 내 고개가 오른쪽을 향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옆에는 한 여학생이 서 있었다. 가슴에 있는 이름표를 바라보니 [이민서]라는 세 글자가 뚜렷이 보였다. 그녀는 입학식에 집중한 듯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학식 이전까지 나는 사랑에 매우 회의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이었다. 특히 금세 사랑에 빠지는 부류를 이해하지 못했다. 상대방을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그저 외모만 바라보는 행위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라니. 사람이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내면을 바라봐야 진짜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한 사람이었다. 이런 내 확고한 신념은 나를 중학교 졸업까지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민서를 본 순간 내 이러한 신념은 산산조각이 났다. 나와 출석번호가 같았던 옆자리에 그녀는 서 있었다. 앞에서 교장 선생님이 뭐라 말씀하시는 것 같았지만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옆모습을 처음 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아, 마음을 뺏긴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아버렸다. 어깨까지 닿을 흑요석 같은 단발, 솔잎처럼 섬세한 속눈썹, 미끄럼틀 같은 매끄러운 코, 앵두 같은 빨간 입술,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이번 역은 도곡역, 도곡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안내 방송이 나를 현실로 되돌렸다. 추억을 회상하다 보니 벌써 도착할 시간이 됐나 보다. 서둘러 지하철에서 내려 사람들 사이를 가로지른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출근하는 사람도, 등교하는 학생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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