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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쓰 Sep 27. 2023

기화펜 러브레터 -2-

민서와의 첫 만남

지하철 출구에서 저 멀리 학교 후문이 보인다. 출구에서 후문까지는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다. 평소엔 이 거리를 천천히 걸어본 적이 없었다. 학교 생활을 위해 등교할 때마다 매일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새벽 탓인지 시간의 감각이 무뎌진다. 지금까지 쫓기듯이 바쁘게 지냈던 학교 생활도 오늘이 마지막이기 때문이겠지. 천천히 후문 앞에 있는 나무를 바라본다. 한걸음 한걸음 자연을 느끼며 걷는다. 조심스럽게 걸어보면 매일 걷던 일상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새로움을 발견한다.


후문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보안관 아저씨는 학교 정문을 지키느라 바쁜 것 같다. 아까부터 쳐다봤던 벚나무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그러고 보면 저 벚나무에서 민서와 처음 대화를 나눴다. 민서와 내가 가장 좋아했던 나무였기 때문일까. 잠시 감상에 잠겼다.


입학식이 끝난 하굣길, 나는 후문으로 향했다. 정문보다 지하철역이 가깝기 때문이었다.  후문까지 이어지는 벚나무 산책로는 청설모 두 마리가 뛰어다녔다. 벚꽃은 너무나 예뻤지만 마음 한 구석에 부족함이 느껴졌다. 이상한 위화감을 느끼며 지하철역과 가까운 후문으로 향했다. 그러다 후문 옆에 있는 마음이 뺏길만한 벚나무와 연못을 발견했다. 그 나무는 숲에서 멀리 떨어져 혼자 고독히 서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나무보다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벚꽃 잎은 물레방아 위에 앉아 어디까지 돌아가고 있었다. 연못을 바라보다 어느새 연못에 입학식 때 만난 그녀의 모습이 일렁였다. 


“너도 벚나무 좋아해?”

그것이 그녀의 첫마디였다. 

“가장 좋아하는 나무야, 꽃잎이 예쁘거든.”

나는 떨어지는 벚꽃 잎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바람에 날아가 잡을 수 없었다. 꽃잎은 그대로 연못 위로 떨어졌다.

나무를 바라보며 여자 아이에게 말했다. 

“입학 첫날부터 나무만 살펴보다니, 특이한 사람이구나.”

"등굣길부터 마음에 담아뒀던 나무인데, 먼저 온 손님이 있더라." 

그녀도 손을 뻗어 꽃잎을 잡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나는 이민서라고 해, 너는?”

“정시우라고 해, 앞으로 잘 부탁해.”     

그 이상 대화 없이 서로 연못을 바라보았다. 입학 첫날에 알맞은 어색한 공기가 주변을 채웠다. 이 상황이 불편하진 않았다. 오히려 달콤한 어색함을 즐기고 싶었다. 얼마 후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일 교실에서 보자, 먼저 가볼게.”

"그래, 내일 봐."


그녀는 떠나갔다. 나는 뒤를 돌아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순간 몸을 짓누르던 긴장이 마법같이 사라졌다. 심장은 자각할 수준으로 빨리 뛰었다. 첫눈에 반한 상대와 대화한 순간은 마법과 같이 느껴졌다. 그녀가 곁에 있기만 해도 행복했다. 헤어질 시간이 온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나도 벚나무를 뒤로하고 후문으로 향했다. 이미 하굣길에 있던 위화감은 사라져 있었다. 


주변에 말소리가 들려 시간 감각이 돌아왔다. 벌써 시간은 7시를 넘어가는 중이다. 해님도 서서히 고개를 들 시간이다. 이러면 시간에 맞출 수 없다. 서둘러 학교 건물로 들어가기 위해 달린다. 벚나무 산책로를 따라 뛰어가니 어디선가 바람이 분다. 뛰어다니는 내 눈앞엔 벚꽃 잎이 흩날린다. 마치 학교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건물로 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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