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화펜 러브레터 -9-
고등학생은 청춘으로 가득한가
11시가 되어 졸업식은 막을 내렸다. 나는 벚나무에 몸을 기대며 사람들을 바라본다. 졸업식이 끝나고 사람들이 건물 밖을 나오기 시작한다. 졸업생들과 부모님들이 후문을 지나간다. 저 멀리 후배들이 선배들과 이별하는 장면도 종종 보인다. 그들의 눈에는 물방울이 맺혀있다. 새삼스레 고등학생 신분으로 마지막 날을 보내는 것을 실감한다. 그중에선 멀리서 상현이를 발견해 손을 열심히 흔들었다. 부모님과 같이 있던 상현이는 내 쪽으로 다가왔다.
“시우야, 우리 오늘이 교복 입고 만나는 마지막 날이야. 너무 슬프다.”
그는 3류 연극배우처럼 엉엉 우는 시늉을 짓는다.
“우리 집이랑 너네 집 5분 거리잖아. 누가 보면 영영 이별하는 것처럼 말한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상현이의 어설픈 우는 연기를 받아쳤다.
상현이는 실실 웃으면서 어설픈 연기를 금세 멈춘다.
“오늘 같은 날엔 분위기 있는 말 하나 정도는 해보고 싶었다고."
그리고 무언가 생각난 듯이 말을 이어간다.
"맞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졸업식 뒤풀이 참석할 거지?”
저번주에 3학년 전체가 만나기로 한 졸업식 뒤풀이가 떠오른다.
반 구분 없이 아쉬운 사람들이 모이기로 한 그 축제는 모두가 기대하는 행사다.
“내가 빠지면 누가 참석하냐, 당연하지. 그때 봐!”
나는 손을 흔들며 상현이를 배웅했다. 상현이는 뒤에 기다리는 부모님과 함께 떠나간다. 친구들을 보내고 나니 학교에 혼자 남은 기분이 든다. 재밌는 소설을 읽고 남은 후유증과 유사하다. 손목시계를 바라보니 11시 10분을 가리킨다. 이미 졸업식은 끝나고 학생들은 떠나간다. 지금은 졸업식의 아쉬움을 느끼고 싶다. 벚나무 아래에서 눈을 감아본다. 다사다난했던 고등학교 생활이 오늘 마침표를 찍는다. 지난 3년을 돌아보니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3학년에 1년간 매달렸던 대학입시는 정말로 괴로웠다. 하지만 친구들과 즐거웠던 추억도 남았다.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찰나, 눈을 다시 떠본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 첫사랑에게 내 마음을 전해야 한다.
“만일 오지 않는다면, 내 첫사랑은 기화펜처럼 여기서 사라지겠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녀가 쪽지의 내용을 봤을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사람이 서서히 줄어들 때까지, 그녀는 오지 않았다. 서늘한 바람에 꽃잎이 휘날렸다. 고개를 들어 꽃잎 소용돌이를 바라보았다. 역시 그녀는 오지 않는 건가. 기화 잉크도 그들과 함께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이미 쪽지는 백지가 되었을 시간이다. 항생제 한 통을 먹은 것과도 같은 쓴맛이 혀에 느껴진다. 하지만 러브레터의 내용을 지키고 싶다. 그저 언제까지나 그녀를 벚나무 아래에서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