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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전하는고양이 Nov 15. 2024

있잖아, 주소 좀 알려줄래?

여기서 보는 하늘이 이렇게 예쁘다고....... 알려주고 싶어.

Rakicevic Nenad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1262302/



하늘이 예뻤다. 이 세계의 하늘이 이만치 예뻤던 적이 있었나. 떠다니는 구름은 왜 이렇게 탐스러워 보이는 건지. 움켜쥐면 손가락 사이사이로 마구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몽실몽실 탱글탱글한 구름. 당연히 잡아본 적이 없지만 '아마도, 언젠가? 난 저 구름을 쥐어본 적이 있어'라는 착각이 들 만큼 생생한 감촉. 내 손이 알고 있는 듯했다. 어둠에 덮여있을 때도 말도 못 해. 어느 날은 높은 곳 또 다른 날엔 낮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달이 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주변에 콕콕 박혀있는 별은 또 왜 귀여운 거야!! 설탕만치 달콤해 보이는 별을 본 날은 자연스레 건빵 한 봉지가 내 손에 들렸다.



가지고 있는 모든 성의를 더해 '예쁨'을 뿜어내고 있는 하늘 덕분에 고개를 뒤로 젖히고 그를 바라보는 시간이 점점 늘었다. 사진은 덤이다. 지나온 세월의 숫자가 하나하나 늘어갈수록 내 몸에 알게 모르게 밴 풍경을 향한 소유욕도 커진다는 말, 웃프지만 그게 뭔지 너무 알 것 같은 거다. 구김살, 회색빛 따윈 없는 뽀오얀 구름, 그 구름 사이로 지나다니는 태양의 빛은 참지 못하고 새어 나오는 환희로 보였고, 하늘이 보여주는 색도 전과는 사뭇 달랐고....... 마흔 해 가까이 본 하늘인데도 불구하고.



물을 넘치게 머금고선 엷게 스친 파란색. 숨겨진 하늘의 뒷모습이 보일 것만 같은 투명함. 눈에 또렷하게 담기는 새파랑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 그러다 보면 그 아이가 있는 곳까지 보일 것 같은. 하늘과 얼굴을 오래 마주한 이유다.



언젠가부터 하늘을 볼 때면 그 아이에게 편지를 받았다는 착각에 빠졌다. 하루 종일 이리저리 무지막지하게 굴러다닌 날, 하늘에서 크루아상 모양의 구름을 봤다. 탁 트인 바다가 보고 싶은 날에는 뭉툭하고 네모진 향유고래가 나타났다. 귀엽게 웃고 있던 벨루가를 발견했을 때, 난 그날 아마 웃느라 잠깐 동안 얼굴의 형체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이스크림, 팩맨, 하트 등등등....... 말도 안 될 정도로 신기하게 또 명확하게 보이는, 셀 수 없이 많은 구름이 하늘에 떴다. 세상과 마음에 어둠이 가득할 때는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달을 보내 그들을 비췄다. 나의 속을 다 알고 있는 듯한 그 아이가 그 모든 걸 띄워 날 투명하게 만들어준 것만 같았다.





정말 그 아인 그랬다. 말하지 않아도 나를 알았다. 나에게 '외로움'이라는 말을 쓴 사람은 그 아이가 유일하니까. 그 아이에게만큼은 난 투명했다. 나도 모르게.





대부분의 지인들에게 난 '외로움'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먼 사람이다. 함께하면 꽤 즐겁고 나름 유쾌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먼저 자신들을 애타게 찾은 적은 드물고, 혼자서도 잘 놀고 잘 있고 또 때론 일부러라도 그런 시간이 필요할 것만 같은 사람. 그들뿐만은 아니다. 나 조차도 내게 '외로움', 그런 말 쓴 적이 없다.





"언니, 참 외롭겠다." 휴대폰 넘어 그 낯선 말을 듣고 순간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던 깊은 밤이었다.





그때, 낯선 말에 알 수 없는 흉통과 불용암 같은 열이 몸을 오르내리는 걸 느꼈다. 틀어막은 입 안에서도 목구멍 너머로 굵직한 눈물이 삼켜졌다. 예상치 못한 말에 하마터면 꾹꾹 눌러 담은, 쪼그라든 압축팩 속 모든 것들이 쏟아져 나올 뻔했다. 이미 들킨 거 같았지만 들킴을 확인 받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슬픔, 아픔과 비슷한 감정을 나누는 건 지금도 생소하고 어렵다. 그것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 난 믿지 않는다. 나눈 만큼 늘어간다는 말이 오히려 난 받아들이기 쉽다. 나눌수록 늘어서 좋은 기쁨, 그런 게 아니잖아. 그래서인지 내 속에 있는 회색 감정을 누군가가 억지로 섣불리 꺼내고자 할 때 난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창을 들었다. 그들이 창을 마주했을 때 반응은 비슷했다.





차분한 화법, 태도지만 그 의미와 눈빛은 '창'처럼 서늘하구나. 창에 맞아 굉장히 아프다.





창을 들 수밖에 없었다. 온전히 보듬어 주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그때부터. 그저 아래 감춰진 것이 궁금해서 들추려는 마음이라는 걸 언젠가 알아버렸으니까. 순간 파헤쳐져 또다시 어지럽혀진 맘을 제자리로 돌려놓지 않고 그냥 떠나버렸으니까. 들어달라할 땐 섬세해서 좋다고 한 나를 들어줄 때가 되니 예민하다며 탓한 적도 있었으니까. 빠르게 창을 들게 된 이유다. 물어보지 말라고. 저 아래 깊숙이 파묻을 테니 그저 시간만 주면 된다고. 그러면 우리 모두 얼굴 붉힐 일 없을 테니까. 내 행동에 대다수는 잠깐동안 몸을 피했다.



단 한 명, 그 아이 빼고. 내가 왜 창을 던지는지를 알고 있었다. 나 스스로 끝도 없는 흔들림을 느낄 때, 겉이 무릇 단단해 보일지언정 사실 저 아래 한없이 나약한 것이 꿈틀거릴 때, 그 모습을 남이 아는 것이 두려워 다가오지 말라고 창을 던진다는 것 역시 알았다. 슬픔과 아픔을 감추려는 마음이 깊어질수록 외로움은 거친 속도로 몸집을 키운다는 걸 그 아이는 알고 있었다.


대다수가 피하는 창을 그 아이는 온몸으로 받아내며 내게 가까이 왔다. 창을 던진 사람 눈에는 창 맞은 자국이 보인다. 단풍의 붉음과는 사뭇 다른, 붉게 얼룩진 옷을 걸친 그 아이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언니 요즘 괜찮아?', '어때?', '내가 얼른 언니 보러 가야 하는데... 미안해'....... 아니 대체 뭐가?? 왜 맨날 미안해? 틱틱 거리는 나의 말도 모두 꾸역꾸역 삼키고 내게 싫은 소리 한마디를 안 한 그런 아이다.






그때 너에게 완벽하게 들킬 걸 그랬나 봐. 그랬다면 너도 나한테 그 속을 털어놨으려나.





온 세상을 채우고 있던, 날이 서고 울퉁불퉁한 아픔이 드디어 떠날 채비를 하고 뒤돌아설 때 즈음, 모두가 조금은 나아진 그날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단 걸 느낄 수 있을 때 즈음. 나의 '외로움'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사라졌다. 너의 창을 받을 준비, 이젠 나도 된 것 같은데 말이다. 너의 '외로움'을 볼 기회는 이제 영영 오지 않을 거라고.


투명한 파란색을 가진 하늘 뒤로 그 아인 가버렸다. 뒤도 안 보고 그렇게 말도 없이 떠나버리고선 내게 또 이렇게 편지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말이야. 하늘을 보면 너에게 답장을 보내고 싶어.

여기서 보는 하늘이 이렇게 예쁘다고....... 알려주고 싶어.





이토록 예쁜 이곳의 하늘을 알려주고 싶다. 또 물어보고 싶다. 내가 보는 하늘 너머 네가 있는 그곳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유독 그 아이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날이 많았던 이유다. 그 아이가 띄운 하늘에 대한 나의 답장을 보내고 싶다.





"있잖아. 주소 좀 알려줄래?"






귀여운 벨루가 구름





커버 이미지 출처: kdry yldz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22717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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