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길을 걷다가 꽃이 내게 손을 내민 거 같은 환영에 빠진 적이 있다. 정신 나간 거 아냐? 꽃에 손이 어딨 냐고? 지금 생각해도 난, 그 꽃이 내게 내민 건 분명 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꽃을 본 순간부터 내 눈은 꽃만을 향했다. 가까이 더 가까이, 한 걸음 두 걸음. 그렇게 두 발이 여러 번 앞뒤로 스쳤고, 한 스무 번 정도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한 발 끝에는 여러 갈래로 뻗친 손을 내민 노란 꽃이 있었다.
전원 버튼이 켜진 청소기(아마도 다이슨) 흡입력을 보유한 꽃의 목표는 나였던가. 성취욕이 충만한 꽃 앞에 난 기꺼이 빨림을 당하겠다고...... 그 앞에 몸을 웅크려 쪼그려 앉았다. 푸른 핏줄이 구불지며 그 존재를 드러낼만치의 다리 저림이 허공에 휘날리는 머리카락까지 전해지는 그 고통은 안중에 없었다. 시퍼렇게 질린 발가락의 아우성에도 귀를 야무지게 닫고 난 주저앉아 꽃을 바라봤다.
그 꽃이 손 내민 자리는 끝도 없이 높고 리스테린 냄새 폴폴 날 거 같은 새파란 하늘, 성냥갑 건물들이 겹겹이 벽을 세워 숨 막히는 도시의 평지가 아닌...... 내 앞, 그 앞에 앞 그 앞에 앞에 또 앞도 눈에 오롯이 담을 수 있는 들판이 펼쳐진, 그런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곳은 아니었다.
그날 나는 매 해 깨부숨을 밥먹듯이 당하는 도시의 거리, 평범하기 그지없는 무채색 포장길 위에서 작지만 탐스럽고 샛노란 꽃망울을 늘어뜨리고선 소리 없는 말을 던지는 그를 봤다. 그는 넝쿨져 서로의 몸에바짝 밀착시키고,뒤엉켜 있는 그들무리에서 이탈해 내게 말을 걸었다.
"지나가는 이여, 시간 나면 내 손 한번 잡아주겠소."
나한테 말을 건네는 것 같은 그에 매혹 당해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뚜벅뚜벅.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과 바쁜 자전거가 공존하는 그곳에서 난 남들보다 한없이 낮은 곳에 쪼그려 앉아 그렇게 몇 분을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그는 알게 모르게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나를 붙잡고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나의 시간에 왜 들어왔던 걸까. 가끔은 그때의 그를 생각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의 시간 안에 들어와 오히려 내게... 나만의 시간을 줬을지도 모른다고. 타인을 위해 어딘가로 가는 날 붙잡고 자신을 통해 펼쳐지는 생각과 능동적인 발걸음을 밖으로 끄집어내려고 했었는지도 모른다고. 스쳐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을 닮은 것 같은 나에게 마음을 들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가끔그가 환영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손을 내밀고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지나가는 이여, 시간 나면 내 손 한번 잡아주겠소." 뒤에는 어떤 말이 이어졌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지나가는 이여, 시간 나면 내 손 한번 잡아주겠소. 내가 있던 넝쿨 안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