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글뱅글 계단을 오른다.
똬리 튼 계단을 몇 번 돌지 않고도 난 집에 도착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뱅글뱅글 몇 번이면 도착하는 곳, 다시 말해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높지 않다.
사람들은 '그래서 저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굳이 계단으로 올라가는구나'라고 말한다. 또 '저 사람은 숨이 찰 이유도 없고 어지러울 가능성도 낮으니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으로 올라가는구나, 왜냐하면 저 사람은 높지 않은 곳에 사니까'라며 말한다(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지 관심을 가지고 보는 사람에 한해서. 하지만 대부분은 관심이 없다).
내가 둥지를 틀고 사는 곳은 높지 않다. 높지 않은 곳에 살지만 나에게는 날개란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기 때문에 높지 않더라도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몇몇의 장치가 필요하다. 계단과 엘리베이터, 둘 중 난 90% 이상 계단을 선택한다.
몇몇의 사람들은 이 건물의 계단을 보며 '직선형 계단들이 일정 주기로 방향을 틀어가며 늘어서 있다'라고 말한다. 난 굳이 그것을 '각이 진 나선형의 계단'이라고 말하는 집단의 사람이다. 어쨌든 내 입장에선 뱅글뱅글 돌고 살짝은 어지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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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난, 1층이 아닌 약속 장소에 들뜬다. 그게 단 2층일지라도 말이다.
들뜸의 정도가 5점 만점에 3점 이상일 때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택한다. 거의 대부분 그러하다는 뜻이다. 뭐가 됐든 첫 계단에 발을 올리기 전은 늘 조금씩 설렌다. 나는 설렌 마음에 긴장을 더해 깊게 숨을 마시고 내뱉는다.
그날그날 계단을 오를 때 내 상태는 다르다. 계단을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어느 날은 더 힘겹게 느껴지고 또 어떨 때는 끝에 다다랐는데도 가뿐히 큰 숨 몇 번이면 본래의 상태로 돌아오기도 한다. 나름의 이유가 있고 깊이 들여다보기 전에는 모른다.
오늘, 난 약속이 있고 약속 장소는 어느 빌딩의 고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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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낮은 곳에서 산다. 엘리베이터는 가끔 탄다. 하지만 내가 낮은 곳에 살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가끔 타는 것은 아니다. 내가 높은 곳에 살았더라도 난 엘리베이터를 지금만큼 이용했을 거다.
낮은 곳에 살고 있고 엘리베이터 대신에 계단을 자주 이용하는 나는, 그래서 나의 단골 미용실 원장님과 내가 같은 동에 산다는 것을, 그 미용실을 다닌 지 대략 3년 만에 알게 되었다. 미용실 원장님은 높은 곳에 살고,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자주 이용한다. 내가 미용실에 갈 때마다 원장님은 엘리베이터 이야길 한다.
"같은 동 사는데 진짜 볼 수가 없어요. 걷는 거 좋아하셔서,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잘 안 타셔서."
"하긴 또 층수가 낮기도 하니까."
완벽하게 맞는 말도 틀린 말도 아닌 중립의 말이다. 원장님과 나는 같은 동에 사는 데도 정말 가뭄에 콩 나듯 본다. 또 내가 걷는 걸 좋아해서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택한 것도 맞다. 하지만 '계단을 택한 것은 층수가 낮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틀리다.
이곳의 시작부터 함께 해 왔지만 높고 낮음의 이유로(?) 시작으로부터 한참 뒤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나와 미용실 원장님은 가끔씩 각자의 집으로 가기 위한 길목에서 마주칠 때마다 그들의 성격과 다른 나름의 호들갑을 떨며 서로를 반겼다. 그리고 안녕-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내가 낮은 곳에 살아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층수가 낮아 걸어 올라가도 힘들지 않으니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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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장소를 향해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였다.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가 이루어진 용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지인은 내 숨소리에 뭐 하고 있냐며 물었다.
"계단 오르는 중이야."
"넌 여전히 계단을 좋아해. 몇 층까지 올라가? 지금은 몇 층인데?"
"오늘은 12층. 지금은 2층이랑 3층 사이쯤."
"2층? 지금 2층 올라와 놓고 그러고 있는 거야? 너 집도 맨날 걸어 올라가잖아?"
"아.. 그게 말이야............ 아니다. 그러게 오늘 체력이 그지 같네."
지인은 계속 피식거렸다. 겨우 2층 올라와 놓고서 숨소리가 그 모양이면 나머질 어떻게 올라가냐... 대충 그런 식이었다.
조금 억울했다. 사실, 난 그때...... 암튼 2층과 3층 사이에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계단을 오른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비상계단에서의 내 위치는 정확히 2층과 3층 사이가 맞았다. 어떻게 설명해도 딱 거기였다.
설명하긴 좀 구차하고 그렇고, 억울한 것도 좀 그렇다.
그러니까 어떻게 봐도 난 지금 2층과 3층 사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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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글뱅글 계단을 오른다.
나는 낮은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똬리 튼 계단을 몇 번 돌지 않고도 집에 도착할 수 있다. 빌딩 고층이든 낮은 집이든 계단을 오르는 방식은 늘 같다. 발이 앞뒤로 겹쳐진다. 한 발이 땅에서 떨어지면 땅을 딛고 있는 나머지 발에 힘이 들어간다. 그 다음 번에는 땅에 닿아 있던 발이 위로 솟고 땅에 떨어져 있던 발은 땅에 발을 딛으며 꾸욱 힘을 준다. 그렇게 교차된다. 이렇게 저렇게. 한 발이 땅으로부터 떨어져 있을 땐 나머지 발과 다리 근육 전체에 그리고 엉덩이까지 힘이 들어간다.
100층의 계단이든 단 한 개의 계단이든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 외에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 한 개의 계단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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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약속 장소는 12층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계단 오르기를 시작했고, 하지만 난 12층보다 한참 전인 2층과 3층 사이에서 벌써 숨이 찼다. 주차를 지하 2층에 해 놓았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대략 5층 높이의 계단을 오른 거나 다름없었다.
구차하지만 또 보태자면 이 건물의 1층 로비의 천장은 꽤 높았다. 키가 큰 샹들리에 조명이 곳곳에 매달려 있었고 실내 조경 역시 키가 컸다. 쉽게 말해 2층 같은 1층이다. 그러니까 실상 내가 걸은 층수는 대략 5층보다 더 높은 6층 정도인 것이다.
대략 6층 정도의 높이지만 층수를 셀 때 지하까지 셈해주는 경우를 자주 보진 못했다. 그걸 설명하기 위해선 이렇게 구구절절 재미없는 말을 늘어놓아야 한다. 난 이미 지나친 2층과 저 앞에 보이는 3층 표시 사이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거다. 설명 없이는 딱히 힘들어 보이지도 않고 또 대 놓고 힘들다고 하기엔 너무 웃긴 그 위치에서 헉헉거리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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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낮은 곳에서 살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자주 이용한다. 종종 사람들은 내가 낮은 곳에서 살기 때문에 힘들지 않게 계단을 오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은 내 입장에선 틀리다. 난 낮은 곳에 살지만,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또 계단 오르는 것도 좋아하지만... 계단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어지러움증을 가지고 있기에(많이 나아졌지만) 뱅글뱅글 각이 진 나선형의 계단을 오를 때, 순간 아찔한 상황과 마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걸 설명하기엔 말이 길어진다.
그래서 '낮은 곳에 살아서 계단을 많이 오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으로 가끔씩! 기꺼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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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이 필요한 상황이 늘어난다. 설명의 길이도 점점 늘어간다. 긴 설명이 필요한 상황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일 수도 그냥 그런 일일 수도 억울한 일일 수도 어쩔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 어쨌든, 긴 설명이 필요한 상황은 늘 조금씩 구불거린다. 구불거리는 것은 쪽바른 것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때론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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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엘리베이터보다 계단을 자주 이용한다. 계단은 구불거리고 엘리베이터는 쪽바르다. 계단은 엘리베이터보다 혼자일 때가 많다. 계단은 엘리베이터보다 시간을 오래 써야 하고 가끔씩 어지럽기도 하다. 나는 언젠가부터 계단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엘리베이터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긴 설명은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커버이미지 출처 :사진: Unsplash의Wim van 't Ein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