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의 밤빵을 먹으면서 R의 밤빵 생각을 했다.
T의 밤빵도 맛있었지만 그냥 불현듯 R의 밤빵을 먹었던 그날이 떠올랐다.
생각을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T의 밤빵이 속상해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사실 R의 밤빵을 맛본 건 예정된 일이었다기 보단 우연한 경험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날이 R의 밤빵을 처음 알게 된 날은 아니다.
단지 그날은 R의 밤빵을 처음으로 경험한 날이다.
R의 밤빵을 안 지는 꽤 오래됐지만 맛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R의 밤빵을 스쳐 지나친 적은 많았다.
R의 밤빵은 스칠 때마다 잔상이 길게 남았다.
R의 밤빵은 까슬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R의 밤빵은 겉에 붙은 소보로(そぼろ)가 유난히 까실해 보였다.
아! 요즘엔 소보로라고 하지 않고 크럼블(Crumble)이라고 하더라.
아직 내 입엔 소보로가 더 잘 붙는다.
난 입에 오래 남는 소보로를 좋아한다.
어쨌든, R의 밤빵은 유난히 까슬해 보였고
그래서 R의 밤빵을 스칠 때마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대망의 그날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 R의 밤빵에 기대를 걸긴 했지만 고대... 까진 아니다.
그러니 날짜미정의 고대한 계획이 아닌 그날의 일은 갑자기 벌어진 우연이다.
수없이 지나친 R이었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R 앞에서 발이 멈췄다.
결국 R로 들어가 R의 밤빵을 보게 됐고,
전보다 가까이서 자세히 R의 밤빵을 봤다.
포슬포슬이 아닌 까슬까슬,
역시나 R의 밤빵은 심히 까슬해 보였다.
큰 집게를 벌려 R의 밤빵을 들어 올렸고, 그때 겉에 붙어 있는 소보로가 떨어졌다.
포슬이 아닌 까슬인 소보로는 떨어지면서도 소리를 냈고,
그 소리에 난 먹어보지 않고도 까슬한 소보로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집은 R의 밤빵이 속이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비닐봉지 속에 있다.
난 R의 밤빵이 든 봉투를 손에 쥔 채,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까슬한 R의 밤빵을 집에 데리고 왔다. 그리고 잠깐 잊었다.
다음날 R의 밤빵을 꺼냈다. 까실한 소보로가 투두둑 떨어졌다.
양손으로 R의 밤빵을 쥐고선 힘을 살짝 줬다.
힘이 살짝 들어간 손이 각각의 바깥으로 벌어졌고, 난 R의 밤빵 속 밤을 봤다.
아. 이래서 유명하구나. 발음하기도 힘든 왕밤빵이다.
왕.밤빵이 아니라 진짜 왕밤.빵이다.
R의 밤빵을 감싸 쥔 열 손가락 모두의 끝에 힘이 들어가 있다.
벌어진 R의 밤빵 한 면을 북 잡아 뜯어 입으로 베어 물었다.
유난히 까슬한 소보로는
위아래 입술 그리고 그를 가르는 경계를 사포질 하며 지나갔다.
위아래 이 사이에 까슬한 소보로가 빠작거렸고,
마침내 포슬한 달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녹는 듯한 부드러움. 마침내부터는 예상 밖이다.
그리고 입안에서 둥글게 자리 잡은 왕밤.
그날은 하루 종일 R의 밤빵 덕에 기분이 좋았다.
흥미로웠던 까슬과 몰래 찾아온 포슬, 상반된 둘의 정도가 나와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T의 밤빵을 먹으면서 R의 밤빵 생각을 했다.
T의 밤빵도 맛있었지만 그냥 불현듯 R의 밤빵을 먹었던 그날이 떠올랐다.
생각을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T의 밤빵이 속상해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네가 까슬거리지 않아서 R의 밤빵이 생각났어'라고 말하면
너무나도 포슬한 T의 밤빵이 속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R의 밤빵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T의 밤빵을 먹으면서 R의 밤빵 생각을 했다.
R의 밤빵은 먹을 때 빠작한 소리가 날 정도로 소보로가 까슬거린다.
난 입에 오래 남는 소보로를 좋아한다.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그뿐이다.
그래서 T 그리고 R의 밤빵 이야기에는
알맹이가 없다.
커버이미지 출처 : pexels의 Nadine Ginzel
*르-----의 밤빵은 정말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