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지노의) 팔당댐을 듣는 토요일 아침 일기
팔당대교를 건너며 팔당댐을 듣는 토요일 아침 일기.
112-1번 버스 안에서 등산복을 입은 아저씨가
휴대전화를 들고
열쇠를 몽땅 내가 들고 왔다. 하하하.
알고 있었냐? 너 어떡하지?
나 팔당대교 이미 건넜는데!
어떡하긴 뭘 어떡해. 내려서 다시 돌아가야지.
하며 한참을 큰 소리로 통화하신다.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서 귀에 꽂았다.
그래도 옅게 들리는 아저씨 목소리를 음악과 함께 듣는다.
예전에는 버스 안에서 60대 이상의 중년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버스 천장이
떠나갈세라 큰 목소리로 통화하시는 걸 들으면
나이를 먹으면 자꾸 저렇게 창피한걸 모르고 뻔뻔해지나보다고.
공공장소에서도 주위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난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집에 들어가서
엄마아빠는 절대 그러지 마셔, 휴대폰 통화 하실때 꼭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소근소근 말씀하셔, 그렇게 해도 전화 속 상대방이 다 들으니깐.
하고 단속했었다.
아빠는 요즘 내가 등 뒤에서
<그러니까 어제 궁금한 이야기 와이에서 나온 할머니는 신분증이 없었으니
통장도 한평생 못 만들고 살았겠다, 그치?>
하는 말에도
뭐? 하고 물으신다. 그러면 나는 같은 내용을 좀 더 간결하게 한 번 더,
아빠가 또
뭐? 하면 좀 더 간결하게 한 번 더.
아유, 귀가 진짜 안 들리네, 이제 진짜 할아버지네, 허허.
하는 아빠의 혼잣말이 라디오 광고같이 반복된다.
소음이 많은 현장에서 오랜 기간 있었으니 아빠는 듣는 능력이 빠르게
안 좋아지고 있다.
엄마는 아빠만큼은 아니지만 같이 버스를 타다보면 바로 그 장면.
휴대전화에 대고 심회장 딸이 오는 토요일 1시에 천호 웨딩홀에서 결혼하고
신랑은 선생님이라더라, 화요일 저녁 회식은 천호초교 뒤 한정식 집이 가격대비
정갈히 잘 나오니 거기서 간단히 먹자, 하며 버스 안 사람들에게 여러 정보를 제공해준다.
늙지 않을 것 같던 나의 엄마 아빠가
저기 다른 아줌마 아저씨들처럼 나이를 먹는다.
엄마의 흰머리, 아빠의 날씬한 종아리,
엄마의 무릎 통증, 아빠의 어깨 통증.
엄마의 백내장 증상, 사면 잃어버리고 또 사면 잃어버리는 아빠의 돋보기안경.
백세인생이라는데 육십이면 뭐가 어때서!
젊지. 아직 시간이 많지.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잘해야 하는데.
알면서 잘 안 되는 건
살을 뺄 때 저녁 6시 이후로는 물만 마시면 되는걸 알면서도
저녁 8시에 자꾸 맥주 한잔 하고 들어가자는 그 마음 같다.
안 된다.
알면서 참 안 된다.
나는 요즘 그림을, 아니 낙서를 한동안 못했지만
새로운 일을 겪어내는 과정에서 새로운 마음들이 생겨나서
다시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꾸준히 그리고 쓰자는 다짐을 또 하고 또 까먹는 일상.
2016년 3월
문인선, <서른에 쓰는 그림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