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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여섯 아빠가 굴리는 눈사람

Son ! 잘 있지 ?

by 문인선
예순여섯 문선비가 빚은 눈사람




얼마 전 봄을 코 앞에 두고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
아침 출근길에 나는 현관 앞에 서서
눈에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뭘 신어야 하지 하고 잠시 생각했다.

아빠는 그날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다가 몸살이 났다고 했다.


엥? 눈사람?
참 아빠답다 생각하고 있는데, 엄마 말이
문지섭, 헝가리의 문지섭에게 보여준다고 그랬단다,
혼자 나가서 한참을 굴리더니 진짜 크게 만들었다고.

그래 봐야 눈사람이지 뭐, 하고 가만히 밥을 먹으며 화제를 돌리고 지나갔다.

서른여섯 딸은 눈을 보면 미끄러운 출근 길 신발이 걱정인데
예순여섯 아빠는 멀리 있는 아들에게 보여줄 생각에
체면 같은 것 없이 아파트 단지에 소복이 쌓인 눈덩이를 굴렸다.

코로나라고
체육관 문 닫아서 못 가니까 운동할 겸 굴렸지 뭐.



Son ! 잘 있지 ?




아빠는 문지섭은 son 이라 부르고,
나는 sun 이라 부르는데,

이 눈사람은 son ! 하고 써놓았으니 오롯이 문지섭꺼다.

Son ! 있지 ?

아빠가
크고 동그랗게 빚은 눈사람.

눈사람을 만들었대서 삐죽삐죽 오돌토돌한 눈덩이 두 개일 줄 알았더니
눈코입에 눈썹에 머리카락까지 잘 생겼네.
이 예쁜 글씨체는 어떻고.


아빠는 멀리 있는 아들이 궁금하다.
번캐같은 문지섭이 또 회사에서 말썽쟁이 같이 굴고 있지는 않을지,
집에선 가만가만 우울해하지는 않을지,
아빠도 지섭이 나이 쯤에 가보았으니까,
가족없이 혼자 해외에 나가서 일을 하는 서른무렵을 보내었으니까.

잘 지내느냐 문자를 보내도 되지만
지섭이에게 다른 위로를, 응원을 보내고 싶었던 거겠지.

아빠가 여전해서
서른일곱, 마흔일곱, 쉰일곱, 예순여섯의
아빠가 너무 여전해서
눈덩이같이 커져가는 고집 속에도 그 천진함이 줄어들지 않고 너무 여전해서
아빠의 흰머리가, 돋보기안경이, 얇은 다리가 눈에 들어올때마다 선뜻선뜻 놀란다.

아빠의 노화가 여기서 멈추기를
내 옆에 오래오래 함께 해주기를
문선비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행복하다
하고 오랜만에 생각한다.


천진한 아빠가,
눈사람을 빚는 예순의 아빠가 있어서
결국은
오늘 하루도
감사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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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가 시작되는 퇴근 길
#오늘은이런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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