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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과 불안이 가득한 일상

어떻게 헤쳐나가 볼 수 있을까

by 문인선
바나나 사서 집으로 가는 퇴근 길 202006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안 보고 살고 싶다. 맞닥뜨리지 않고 싶은 사건은 안 마주하고 살고 싶다.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인간은 안 만나고 살고 싶다.
그래서 매번 온 기를 세워가며 싸웠는지 모르겠다. 내 앞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재수 없으니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나한테, 내 앞에서는 안된다고.

현실이 원래 그렇다는 소리는 듣기도 하기도 싫었는데, 어느새 안녕하세요 처럼 습관같이 하는 말이 되었다.

회사는 원래 그래, 돈 버는 게 원래 그래, 원래 힘들어, 원래 이상해, 원래 불공정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저녁, 형광 분홍에서 짙은 남색으로 그라데이션으로 펼쳐지는 하늘, 한낮의 열기를 가라앉히는 바람
만으로도
전하지 못하는 감정과 넘치는 이야기가 생기던 시간이 있었다. 걷고 또 걸어도 몽글한 기분이 가라앉지 않아 들뜬 채로 잠이 들던 밤이 있었다.

이십 대에는 가능했고, 삼십 대에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것이었다면, 더 많은 짝사랑을 더 많은 고백을 할 걸 그랬다.
어차피 십 년이 지나면 얼굴도 이름도 오래된 연필 자국처럼 흐려지는데, 그땐 창피한 것이 많았다.

스트레스 대처가 유연 해지는 것 같아도, 감각이 둔해지는 것처럼 보여도
나만 더듬더듬 느꼈지, 안으로 쌓이는 것은 분명했는지 어느 순간에는 문득,
달려오는 친구에게 뒤통수를 팍 하고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멍 하고 아프다.

오늘을 어제처럼 보내고, 올해를 작년처럼 보내면 안 되겠다는 강박증에 매일을 조급하게 다그치고 지내다 몸살이 났다. 그런데도 자꾸 마음이 급해진다. 쌩 하고 토끼가 엉덩이만 보인채 달려 나가는 것 같이, 그놈이 한 바퀴를 너끈히 제치고 두 바퀴째 나를 제쳐 또 엉덩이를 보여주며 씽씽 달려 나가는 것 같이.

지난 십 년이 괜찮았던 건가.
내가 무엇에 취해있었나.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매일 하루 일과를 시간대별로 짜고 또다시 짜 놓고는 중간에 낮잠을 자버려 망했다고 씩씩거리며 바보같이 구는 수험생이 된 기분이다. 조급과 불안이 가득한 이 일상을
어떻게 헤쳐나가 볼 수 있을까.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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