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안녕이라 그랬어 》

나의 평온=타인의 불행

by 책방별곡

김애란 작가님의 《안녕이라 그랬어》를 이제야 읽었다. 책 속에 실린 단편들 중 가장 좋았던 작품은 <좋은 이웃>이다. 이 작품은 다 읽은 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칼에 베인 것 같은 통증이 아니라 아주 얇은 종이에 손가락을 베였을 때처럼 쓰라리고 신경 쓰이는 그런 느낌이었다.


​주인공 주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독서지도사다. 겉으로 보기에 그녀와 남편은 더없이 상식적이고 교양 있는 소시민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 매끄러운 표면 아래 감춰진 우리들의 민낯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특히 남편이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헌책 수거함에 버리는 대목에서 씁쓸함이 밀려온다. 한때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던 청년이 이제는 재개발과 집값을 걱정하며 과거의 연민을 쓰레기처럼 버리는 모습. 그게 꼭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리는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적당히 매너를 지키며 사니까. 하지만 김애란은 묻는 것 같다. "나의 평온이 타인의 불행을 외면한 대가라면, 그래도 우리는 '좋은 이웃'인가."
​소설 속 아파트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공간이다. 층간소음에 날을 세우고 집값이 떨어질까 봐 흉흉한 소문은 입을 닫아버리는 곳. 우리가 말하는 '좋은 이웃'의 정의는 어쩌면 서로에게 철저히 무관심한 사람을 뜻하는 건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 소설 속 인물들이 악당이 아니라 그저 불안에 떠는 평범한 사람들이라서.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점점 타인에게 인색해지는 우리들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쳤기 때문이다.
​차가운 콘크리트 벽 너머, 우리가 정말 잃어버린 건 이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두 번째로 좋았던 작품은 <레몬케이크>다. 제목만 보면 상큼하고 달달한 디저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만 작가님의 소설이 늘 그렇듯 이 작품 역시 달콤함 뒤에 숨겨진 씁쓸한 현실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소설 속 주인공은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을 털어 작은 책방을 연다. 평소 꿈꾸던 공간을 만들고 싶었지만 현실은 월세 걱정과 파리 날리는 매장뿐이다. 그녀가 1주년 행사가 취소되고 아무도 없는 텅 빈 가게에서 먹는 '레몬케이크'는 낭만이 아니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강박적인 의식처럼 보인다.


​작가는 꿈을 좇는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를 건조한 문체로 보여준다. 겉으로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행복한 사장님이지만 속으로는 미래에 부모님의 노후를 책임져야 한다는 공포로 썩어 들어가는 청춘의 초상이다. 그것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자영업자의 얼굴이기도 하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하는데 우리는 자꾸 그것을 소유하려다 빚을 진다."


​소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레몬케이크의 첫맛은 찌릿할 정도로 시지만 끝맛은 혀에 오래도록 떫게 남는다. 주인공이 마주한 현실도 그렇다. 자유라는 이름의 새콤함은 잠깐이고 책임이라는 껍질은 질기고 쓰다.
​달콤한 몽상이 깨진 자리에서 비로소 진짜 삶이 시작된다. <레몬케이크>는 그 차가운 진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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