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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별곡 May 16. 2023

(1탄) 독수리 팔자 VS 며느라기 팔자

-독수리 팔자-

"에휴~아가씨는 사주가 독수리 팔자네. 외로운 팔자야. 나이가 40이 되면 주위에 아무도 없겠어."


한밤중 정신없는 와중에도 20년 전 역술가가 내뱉은 말들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따라라라~ 라라라~ 온 집안을 뒤집어 놓는 정체불명 소리에 놀라서 잠이 깼다. 학원일을 마치고 피곤에 쩔어 잠들었던 나는 아파트에 불이라도 났나 싶어서 거실로 후다닥 뛰어나갔다. 이 집에 7년째 살면서 처음 들어본 경비실 호출 벨소리였다.

"네. 여보세요?"

"여기 경비실인데 경찰관이 찾아왔어요. 바꿔줄게요"

"네???"

"00 파출소 경찰관입니다. 000 씨 댁 맞나요?"

"네. 무슨 일이시죠?"


그때서야 남편이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코로나가 완화되고 마스크 해제 이후로 부쩍 회식이 잦았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술자리를 가졌다. 밤 9시 30분쯤 전화했을 때 많이 마신 듯 목소리가 풀려있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남편이지만 지금까지 블랙아웃이 돼도 집은 잘 찾아왔기에 걱정이 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술주정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에 회식이 있는 날은 더 빨리 잠자리에 들었다. 연애 때는 하지 않던 주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졌다. 조용히 집에 들어와서 잤으면 좋겠는데 계속되는 헛소리에 이제는 귀엽지 않은 애교짓, 아이까지 깨워버리는 그 모든 행위들이 짜증 났다. 나이가 드니 술이라는 놈에게 잡아먹히는 남편의 꼬락서니가 보기 싫었다. 신혼 초처럼 계속 연락하며 빨리 들어오라고 닦달하기도 귀찮았다. 폰을 거실에 놔두고 자러 들어갔다. 무심한 마음이 나비효과가 되어서 내 발등을 찍는 일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지금 남편분이 길에 쓰러져 있는 걸 지나가던 분이 발견하시고 파출소에 신고하셨어요." 

"네???" 말문이 막혀서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머리라도 깨져서 피를 흘렸나? 아니면 왜 쓰러져? 고지혈증 있는데 뇌졸중 그런 거 아니겠지?’

짧은 순간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 파출소에 있으니 데리러 오세요."

"아... 정말 죄송합니다. 데리러 가야 하는데... 그런데 제가 운전을 못해서... 어떡하죠?" 

몇 초간의 침묵이 흘렀다.  황당한 경찰관은 속으로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라며 오만 욕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남편이 파출소에 있는데 지금은 못 가니 내일 아침 정신 차리면 보내달라는 말로 들렸을지도.

"아, 그래요? 지금 댁에 누구누구 있죠?"

"아이랑 저밖에 없어요."

"그럼 저희가 데리고 올 테니 전화하면 지하주차장으로 나오세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경비실 인터폰을 끊고 재빠르게 핸드폰을 확인했다. 밤 12시 40분이었다. 부재중 전화가 10통 넘게 와있었다. 12시 10분부터 30분까지 남편폰으로 4통, 모르는 번호로 2통 폭탄 같은 알람들이 액정화면에 떠있었다 형님과 큰 아주버님은 전화를 안 받으니 보이스톡으로도 계속하셨다. 얼른 형님께 통화 버튼을 눌렀다.

"동서~경찰관이 집에 갔어? 동서가 하도 전화를 안 받아서 집주소 가르쳐줬어. 이게 뭔 일이래~~ 경찰관이 동서가 전화를 안 받으니 큰집에 큰 아주버님께도 전화를 했어. 큰 아주버님은 동서랑 연락이 안 되니 우리한테 전화했고!"

“죄송해요. 전화를 진동으로 해놓고 거실에 놔두어서 몰랐어요. 열 시 전 통화할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그래 어서 전화 끊고 도련님 데리러 가”

“네 형님.” 전화를 끊고 파출소에 있는 남편보다 곤란한 내 입장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큰집에 큰 아주버님? 아뿔싸! 모르는 전화번호가 바로 시댁 큰집에 사촌형님네 것이었다. 큰집까지 전해지다니. 경찰관은 왜 하필 그분들에게 전화를 했지? 다른 가족들 다 놔두고! 잠옷을 갈아입으며 이 난리부르스가 시어른들께 알려지고 그로 인한 후폭풍에 눈앞이 깜깜했다.


십분 후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니 비틀거리며 인사불성일 줄 알았던 남편이 멀쩡하게 경찰차에서 걸어 나왔다. 겉보기엔 술에 취한 사람이 아니었다. 기가 막혔다. 죄인처럼 연신 허리를 굽히며 경찰관 두 명에게 죄송합니다와 감사합니다 두 문장만 반복했다. 경찰관 한 명은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받아 적었고 다른 한 명은 토사물로 더럽혀진 셔츠를 건넸다. 파출소에 토를 했다며 짜증이 잔뜩 묻어난 표정과 목소리였다.

부끄러워 벌게진 얼굴로 그들과 눈도 못 맞추며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닫히자마자 쌍욕을 퍼부었다. “잘한다 잘해~~ 술을 얼마나 마셨으면 길바닥에서 쳐자니? 같이 술 마신 사람들은 다 어디 갔어?” 남편은 겉모습은 멀쩡했지만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렸는지 눈동자가 텅 비어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묵묵부답이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을 다 벗더니 화장실 입구에 엎드려 밤새 구토를 하며 낑낑댔다. 다음날 도저히 출근을 할 수가 없어서 월차까지 냈다.


오전 내내 토를 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이렇게 살아있는 게 어디야. 40에 독수리가 될 팔자라는 역술가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건가... 하늘이 불쌍한 인생을 도우셨나? 파출소에 신고한 고마운 분께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 귀인이 아니었다면, 만약 그대로 길에 쓰러져 있었다면 사주팔자는 실현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천만다행으로 고독한 독수리 팔자는 비켜갔지만 호구 며느라기 팔자는 끝이 없다는 걸 그날 저녁 깨달았다.


-2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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