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휴~아가씨는 사주가 독수리 팔자네. 외로운 팔자야. 나이가 40이 되면 주위에 아무도 없겠어."
한밤중 정신없는 와중에도 20년 전 역술가가 내뱉은 말들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따라라라~ 라라라~ 온 집안을 뒤집어 놓는 정체불명 소리에 놀라서 잠이 깼다. 학원일을 마치고 피곤에 쩔어 잠들었던 나는 아파트에 불이라도 났나 싶어서 거실로 후다닥 뛰어나갔다.이 집에 7년째 살면서 처음 들어본 경비실 호출 벨소리였다.
"네. 여보세요?"
"여기 경비실인데 경찰관이 찾아왔어요. 바꿔줄게요"
"네???"
"00 파출소 경찰관입니다. 000 씨 댁 맞나요?"
"네. 무슨 일이시죠?"
그때서야 남편이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코로나가 완화되고 마스크 해제 이후로 부쩍 회식이 잦았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술자리를 가졌다. 밤 9시 30분쯤 전화했을 때 많이 마신 듯 목소리가 풀려있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남편이지만 지금까지 블랙아웃이 돼도 집은 잘 찾아왔기에 걱정이 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술주정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에 회식이 있는 날은 더 빨리 잠자리에 들었다. 연애 때는 하지 않던 주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졌다. 조용히 집에 들어와서 잤으면 좋겠는데 계속되는 헛소리에 이제는 귀엽지 않은 애교짓, 아이까지 깨워버리는 그 모든 행위들이 짜증 났다. 나이가 드니 술이라는 놈에게 잡아먹히는 남편의 꼬락서니가 보기 싫었다. 신혼 초처럼 계속 연락하며 빨리 들어오라고 닦달하기도 귀찮았다. 폰을 거실에 놔두고 자러 들어갔다. 무심한 마음이 나비효과가 되어서 내 발등을 찍는 일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지금 남편분이 길에 쓰러져 있는 걸 지나가던 분이 발견하시고 파출소에 신고하셨어요."
"네???" 말문이 막혀서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머리라도 깨져서 피를 흘렸나? 아니면 왜 쓰러져? 고지혈증 있는데 뇌졸중 그런 거 아니겠지?’
짧은 순간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 파출소에 있으니 데리러 오세요."
"아... 정말 죄송합니다. 데리러 가야 하는데... 그런데 제가 운전을 못해서... 어떡하죠?"
몇 초간의 침묵이 흘렀다. 황당한 경찰관은 속으로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라며 오만 욕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남편이 파출소에 있는데 지금은 못 가니 내일 아침 정신 차리면 보내달라는 말로 들렸을지도.
"아, 그래요? 지금 댁에 누구누구 있죠?"
"아이랑 저밖에 없어요."
"그럼 저희가 데리고 올 테니 전화하면 지하주차장으로 나오세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경비실 인터폰을 끊고 재빠르게 핸드폰을 확인했다. 밤 12시 40분이었다. 부재중 전화가 10통 넘게 와있었다. 12시 10분부터 30분까지 남편폰으로 4통, 모르는 번호로 2통 폭탄 같은 알람들이 액정화면에 떠있었다 형님과 큰 아주버님은 전화를 안 받으니 보이스톡으로도 계속하셨다. 얼른 형님께 통화버튼을 눌렀다.
"동서~경찰관이 집에 갔어? 동서가 하도 전화를 안 받아서 집주소 가르쳐줬어. 이게 뭔 일이래~~ 경찰관이 동서가 전화를 안 받으니 큰집에 큰 아주버님께도 전화를 했어. 큰 아주버님은 동서랑 연락이 안 되니 우리한테 전화했고!"
“죄송해요. 전화를 진동으로 해놓고 거실에 놔두어서 몰랐어요. 열 시 전 통화할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그래 어서 전화 끊고 도련님 데리러 가”
“네 형님.” 전화를 끊고 파출소에 있는 남편보다 곤란한 내 입장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큰집에 큰 아주버님? 아뿔싸! 모르는 전화번호가 바로 시댁 큰집에 사촌형님네 것이었다. 큰집까지 전해지다니. 경찰관은 왜 하필 그분들에게 전화를 했지? 다른 가족들 다 놔두고! 잠옷을갈아입으며 이 난리부르스가 시어른들께 알려지고 그로 인한 후폭풍에 눈앞이 깜깜했다.
십분 후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니 비틀거리며 인사불성일 줄 알았던 남편이 멀쩡하게 경찰차에서 걸어 나왔다. 겉보기엔 술에 취한 사람이 아니었다. 기가 막혔다. 죄인처럼 연신 허리를 굽히며 경찰관 두 명에게 죄송합니다와 감사합니다 두 문장만 반복했다. 경찰관 한 명은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받아 적었고 다른 한 명은 토사물로 더럽혀진 셔츠를 건넸다. 파출소에 토를 했다며 짜증이 잔뜩 묻어난 표정과 목소리였다.
부끄러워 벌게진 얼굴로 그들과 눈도 못 맞추며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닫히자마자 쌍욕을 퍼부었다. “잘한다 잘해~~ 술을 얼마나 마셨으면 길바닥에서 쳐자니? 같이 술 마신 사람들은 다 어디 갔어?” 남편은 겉모습은 멀쩡했지만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렸는지 눈동자가 텅 비어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묵묵부답이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을 다 벗더니 화장실 입구에 엎드려 밤새 구토를 하며 낑낑댔다. 다음날 도저히 출근을 할 수가 없어서 월차까지 냈다.
오전 내내 토를 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이렇게 살아있는 게 어디야. 40에 독수리가 될 팔자라는 역술가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건가... 하늘이 불쌍한 인생을 도우셨나? 파출소에 신고한 고마운 분께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 귀인이 아니었다면, 만약 그대로 길에 쓰러져 있었다면 사주팔자는 실현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천만다행으로 고독한 독수리 팔자는 비켜갔지만 호구 며느라기 팔자는 끝이 없다는 걸 그날 저녁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