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얼굴의 악에 대하여
영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의 가족이 살아가는 집과 정원, 평온한 일상의 풍경을 담는다. 그러나 화면 밖에서는 굴뚝에서 피어나는 연기, 총성과 고함, 소각로의 굉음이 끊임없이 들린다. 감히 담을 넘지 않는 카메라는,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상상력을 자극하고 죄의식의 문을 열어젖힌다.
영화는 직접적인 폭력을 단 한 컷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로 인해 더 깊은 공포에 빠진다. 우리의 시선은 온전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가족에게 고정된다. 정원 가꾸기, 아이들과의 피크닉, 파티 준비. 그 모든 장면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지만, 끊임없이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이 모든 평범함의 기반이 얼마나 부도덕한 것인지 드러낸다.
불협화음, 진동음, 그리고 일종의 괴기스러운 전자음이 화면을 채운다. 종종 음악인지, 소음인지조차 구분되지 않는 사운드는 소름이 끼친다.
이 영화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 중 하나다. 주인공 루돌프 회스는 악랄한 괴물이 아니라, 가족을 부양하고 낚시를 하며 승진을 걱정하는 ‘성실한 가장’이다. 그의 아내는 더 좋은 생활을 위해 아이를 보살피며, 집안의 화초 하나하나에 애정을 쏟는다. 이들은 자신들이 거대한 악의 톱니바퀴 속에 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그 모습은 불쾌할 정도로 익숙하다. 타인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말과 행동이 지금도 우리 주변에 있다. 나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는 사실이 더 무섭다.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괴물이 아니라, 너무도 평범한 인간들이다. 아이들을 돌보는 손으로 생명을 지우는 이중성. 이 영화는 그 사실을 서늘하게, 서늘해서 더 아프고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