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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 Feb 14. 2018

채용인원 00명의 비밀

어영일 (어차피 0명은 1명)

인사는 다 0명이었다. ALWAYS.


난 맨 처음에 0명이라고 써져있는 것을 보고, '아니 한 명도 안뽑는데 왜 채용공고를 내?' 이러면서 의아해했었다. 그것이 곧 9명 이하의 인원을 이야기하는 줄 누가 알았겠나.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또 바로 알게 되었다. 인사직무에서의 0명은 정말 1명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걸.

정말 인사직무는 내가 봤던 모든 공고를 통틀어 0명이 아닌 곳이 없었다.




본격적인 채용 시즌이 될 때마다, 뉴스에서는 각종 대기업들의 채용규모에 대해 앞다투어 보도한다. 채용하는 숫자만 놓고 보면, 어떤 취업준비생들이라도 희망을 가질 수 있을만한 엄청난 숫자다.


2017년 신문기사 (출처 : 국제신문)



"저렇게나 많이 뽑는데, 저 자리 중에 내 자리 하나쯤은 있겠지"라는 생각이,

"아니, 저렇게나 많이 뽑는다고 했는데 왜 자꾸 떨어지는거지?!"라는 생각으로 바뀐다.


예상할 수 있듯이, 저 숫자는 '모든 직군의 채용인원을 모두 포함한 숫자'라서 그렇다.


※ 직군 (Job group 혹은 Job Family) 

: 조직 내에서 직무의 성질이 유사한 것들을 한데 묶은 것. (ex. 생산직, 영업직, 경영지원직)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직군의 채용인원은 직무별 TO로 나누어지게 되고, 또 그 안에서 고용형태별 혹은 신입/경력TO 등으로 나누어진다. 지역별로도 나누어지고, 전공별로도 나누어진다.

쪼개고 쪼개는, 마치 2분의 1이 64분의 1이 되는 마법을 보듯이 어느새 남아있는 인문계TO, 인사TO는 0명이 되고 마는 것이다.


※ 고용형태 

: 기한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 기간제근로자, 무기계약직 등



실제로 채용담당자가 되어서도, 취합되어져 온 인력계획의 전공들을 보면 온통 이공계다. 물론 종사하는 업종의 특성일 수도 있겠지만, 단 한 번도 인문계TO가 이공계TO를 넘은 적이 없었다. 


같은 인문계 선배로써 너무 안타까웠던 적이 많았다.

전혀 나무랄 데 없는 친구들도 인문계는 떨어졌다. 채용인원 자체가 적었기 때문에.

왜 인문계 전공들은 이렇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회의도 있었다.

이공계 친구들은 모두 어필하는 것이 전공관련 프로젝트, 과제, 연구활동 등이지만 인문계 친구들이 전공관련해서 어필하는 것은 별로 보지 못했다. 거의 대외활동, 인턴 등을 이야기한다. 

사실 한없이 어렵고 심오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문계의 전공들이다. 다만, 그렇게 전공을 공부하는 것이 현재의 취업시장의 요구와 직결되는 부분이 적기 때문에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지원서 작성을 할 당시 제일 나를 괴롭혔던 것이 바로 저 '0명'이었다. 0이라는 숫자가 이렇게도 내게 부담을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이야 '아, 내가 서류합격률이 높은 편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 그 당시에는 매일이 불합격 소식이었다. 

떨어질 때마다, '다음에는 잘될거야, 다음에는 잘될거야'라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그러는 것도 한두 번이었다. 공고를 볼 때마다 여지없이 써져있는 '인사 = 0명'이라는 문구에 점점 희망이 메말라갔다. 그러면서 작성하기 시작했던 것이 바로 은행권이었다.


사실 나는 은행을 갈 생각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용공고에 쓰여져있는 저 '000명'이라는 숫자에 끌려 무조건 쓸 수밖에 없었다. 무려 은행권 자기소개서는 '복붙'이 거의 안될 정도의 창의성있는 답변을 요구했는데도 써야만 했다.



은행을 갔다면 나는 과연 일에 만족했을까?

글쎄, 입행했어도 한번쯤은 인사 직무에 지원해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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