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부 > 희망 일깨우기
7. 박 병장에서 박 의원으로
그와 같은 신속한 응급조치와 더불어 놀라운 침술 솜씨, 그리고 적절한 처방 덕분에 박 은성 씨는 비록 수인의 신분이었지만 구치소 안팎에서 점차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그 사람은 침 하나로 사람을 살린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마침내 구치소 내에서는 그를 ‘박 병장’이 아닌, 자연스럽게 ‘박 의원’ 또는 ‘박 선생’이라고 불렀다. 각자 맡은 작업장에서 여러 가지 작업을 하다 보면 더러 다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다쳤을 때, 먼저 의무실에 갈 것이나 자연스럽게 박 선생, 박 의원을 찾아가라고 권했다. 그렇게 치료를 잘한다는 입소문을 듣고 박 선생을 찾았다.
그리고 박 선생은 찾아온 그들에게 누가 되었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한번 찾아와 박 선생에게 치료를 받은 사람은 자연 다음에도 꼭 다시 찾아오는 것이었다.
박 선생은 진료에 앞서 상대방에게 항상 겸손한 자세로 그리고 정성을 다했다. 그러한 박 선생의 모습은 본래 자신의 타고난 모습이기도 할 것이나, 본인이 이야기하기를, '형님과 함께 오래 생활하다 보니 자연 형님의 그러한 모습을 본받고, 배우게 되었다고 토로하였다.
1988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선생이 먼저 석방되었고, 그로부터 1년 뒤인 1989년, 박 은성 씨도 석방되었다. 감옥 밖에서도 두 사람의 인연은 이어졌다. 감옥 안에서 맺어진 선생과 박 병장과의 맺어진 '의형제’ 관계는 사회로 나와서도 처음처럼 끊임없이 의형제 관계를 유지하며, 마치 친형제처럼, 아니 그보다 더 돈독하게 아우를 사랑하는 형으로서, 형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아우로서 관계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제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