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의 시대는 어떠한가?

천주교 성지 천진암에서

by 청목


지난 10월 중순, 동아리 모임에서 경기도 광주 시 퇴촌면에 있는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 ‘천진암 ’에 가게 되었다.

조선시대 이곳은 본래, 사찰(寺刹) '주어사'의 암자였던 ‘천진암’이었다.

당시 이곳이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산 깊은 곳인 까닭에 스님들의 도움을 받아

은밀하게 모이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초기 천주교 신도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에 모여 하느님이 말씀을 배우고, 전하고,

예배를 드렸던 ‘한국의 천주교’의 역사가 처음 시작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지금 이곳에는 이벽,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 '다산 정약용'의 형님인 정약종,

이렇게 다섯 분의 순교자 묘역이 있고 그곳 숲 속에 성당이 있었다.

이곳을 탐방하기로 약속하였으나 당일 비가 많이 내린다는 일기 예보가 있어 서로

의견을 들어 보기로 했다.

우선 비가 내려도 예정대로 갈 것인지, 아니면 한주 미루어 갈 것인지를 회장님은

회원들의 의견을 물어 결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새벽같이 여행을 떠나야 해서 전날 준비도 해야 하고 솔직히

비 온다는 핑계로 좀 쉬었으면 하여 일단 ‘연기 안’에 투표했다.

그런데 결국 비가 내려도 예정대로 강행하자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우리 일행은 예정대로 출발하였고, 예보했던 대로 차창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길이었지만 그곳 광주군 퇴촌면 천주교 성지, '천진암'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다행히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비가 멈추었고, 오히려 이곳이 '천주(하느님)를 모시는

성지(聖地)'라는 분위기를 더욱 실감할 수 있게 하얀 구름이 주변 산자락을 온통

휘감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딴 세상에 온 듯하였다.

출발하기 전, 비가 내리는 것을 우려했지만 쨍쨍한 햇빛보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고, 그 분위기가 이곳이 바로 성지라는 것, 찾아간 우리의 마음을

더욱 경건하게 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라는 책을 읽은 일이 있다.

거기 이런 말이 생각난다.

“너희들의 시대에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를 생각이 다르다고 죽이지 않는가?”

하고 다산 정약용이 묻고 있다.


그 당시에 천주 하느님을 믿고 따르고, 그 말씀을 전하였다고 잡아다 죽게 했다.

이와 같이 다산의 셋째 형 '정약종'이 순교하였고, 또 다른 네 분과 함께 이곳에 모셔져

있었다.

'다산' 역시 형처럼 죽지는 않았지만, 강진으로 유배되어 무려 18년 동안이나

귀양살이를 해야 했다. 그리고 흑산도로 유배 갔던 둘째 형, '정약전'은 <자산어보>라는

책을 남기고, 그곳에서 끝내 숨지고 말았다.


비가 차분하게 내리고 있는 그곳을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처음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는 핑계로 일정을 다음으로 미루고자 했으나, 오히려

이렇게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순교하신 그분들이 나에게,

“너희도 너희 목숨을 걸고 하느님을 믿고 따르겠느냐?” 물었다면,

내가 어떻게 감히 '예!' 하고 대답할 수 있겠는가?


가을비 내리는 이곳 ‘천진암’ 성지를 돌아보며 나의 '믿음'에 대하여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그저 비가 내린다는 핑계로 오늘 일정을 다음으로 미루고자 하지 않았던가?

이곳에 누워계신 선인들은 하나같이 자기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내어놓고 순교하신

그 숭고한 ‘믿음’ 앞에 소위 나의 믿음이란 얼마나 얄팍하고 가소로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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