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서시(序詩)'를 처음 읽을 때, 시인 윤동주가 이십 대의 한창 젊은 나이여서
그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물론 젊으니까, 그러한 순수함을 잃지 않고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맹자(孟子)의 '인생삼락(人生三樂)'에 이르기를,
‘하늘을 우러러보고 아래로 사람을 굽어보아도 부끄럽지 않음’이 두 번째 즐거움이라 했다.
이 대목을 읽으며, 바로 윤동주의 '서시'를 다시 떠올렸다.
‘아! 맹자님은 벌써 이천여 년이나 앞서 이 이야기를 하셨다니.’ 하는 생각과 함께,
윤동주 스스로의 마음가짐으로 충분히 그리 썼을 수도 있고, '동양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탐독하는 가운데 그와 같은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두었다가
'서시'에 이 부분을 다시 썼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생각하면 인간의 어떤 '생각'이나 '사상'은 어느 한순간에 새롭게 창조되는 경우도
더러 있겠으나, 그보다는 길고 긴 인류 역사를 통해 반복되고, 다시 일깨워진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고전을 탐독하다 보면 '성현(聖賢)'들의 가르침을 만나보게 되는데,
이미 수백, 수천 년 전, 그 시대에 벌써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깨달을 때마다 그저 깜짝 놀라움으로 다가오곤 한다.
맹자의 인생삼락, 두 번째 가르침 ‘하늘을 우러러보고 아래로 사람을 굽어보아도
부끄럽지 않음이라’하였는데, 아마도 이것을 실천함이 가장 어려울 것이라 여겨왔다.
어쩌면 '서시'를 쓴 '윤동주' 시인이야말로 그 가르침을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고자 했을 것이며,
스스로 그러지 못했다고 여길 때,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최근 진주에 계시는 어른 '김장하 선생'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그분을 처음 뵈었을 때, 그저 가만히 미소를 지을 뿐 별말씀은 없으셨다.
나는 그분의 책에서 본,
'무재칠시(無財七施)'에 대해서 여쭈어 보았다. 역시 조용히 웃으시며,
"첫째가, 화안시(和眼施) 얼굴빛을 환하게, 둘째로, 자안시(慈眼施) 눈빛을 편안하게,
세 번째로 언사시(言辭視) 말씨를 부드럽게 ……."
그리 말씀하시고 나머지는 스스로 알아보라는 듯, 인자하신 얼굴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셨다. 그리고 선생은 바로 방금 나에게 말씀하신 그 표정, 온화하신 눈빛, 조용하고 부드러운 말씨,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때 문득 생각이 났다.
맹자의 두 번째 가르침과 바로 윤동주의 '서시…'
‘하늘을 우러러보고 아래로 사람을 굽어보아도 부끄럽지 않기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하는,
김장하 선생이야말로 자신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그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자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나로서는 김장하 선생처럼,
'하늘을 우러러보고, 아래로 땅을 굽어 보아도 한 점 부끄럼 없기를' 하고. 당최 기대하지 않으나, 그래도 이제 밝아오는 새해에 스스로에게 다짐 하기를 다음의 세 가지,
첫 번째로 '밝은 얼굴 표정',
두 번째로 '편안한 눈빛',
세 번째는 '부드러운 말씨'이다. 이 세 가지만이라도 잘 실천해 볼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