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생각~!

목요일 늦은 8시 15분~!

by 청목


저녁 무렵 벽에 걸린 시계를 보게 되었다.

올려다본 시계는 늦은 8시를 막 지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목요일, 지금 저녁 8시, 당시 이 시간이면 '우이 선생'의 청강생으로

온수역에서 가까운 성공회 대학교를 서둘러 가고 있을 바로 그 시간이었다.


그 강좌는 본래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한 인문학 강좌였으나 저녁 늦은 그 시간만큼은

선생님께 미리 말씀드리면 청강생으로 수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를 한 것으로

안다.

당시 매주 목요일, 학교 수업을 마치면 거의 빠짐없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시간에

늦지 않도록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당시 우이 선생을 만나고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그 시간은 일주일 가운데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할수록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강의 시작 시간은 늦은 '정각 8시'가 아니었고 정확히 '8시 15분'에 강의가

시작되었다.

처음 생각하기로 아마도 '8.15 광복절'과 연관 지어 8시 15분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으나,

선생께서 강의 시작 시간을 그렇게 정하신 까닭은 '20년 20일 동안의 길고 긴 수감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가석방으로 풀려 나오신 그날이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해, 바로 1988년 8월 15일

이었던 까닭에 선생님께 있어서는 너무나 특별한 그날을 잊지 않게 위해 늦은 밤,

'8시 15분'에 수업을 시작하는 것이라는 선배의 이야기를 들었다.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선생의 강의를 들어야 할 것이나, 성경 말씀에도 있듯,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따르지 못한다'는 말씀대로 솔직히 어느 때는 꾸벅 졸기도 하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이제는 마주하며 다시 듣고 싶어도 이제는 들을 수도 없고

지난날 그때를 돌아보면 그저 안타깝고 선생께 그저 송구스러울 뿐이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 어느 날, 늦은 저녁 시간 선생은 강의를 하시던 중, 잠시 고개를

돌려 잔기침을 한참이나 하시는 것이었다.

선생은 "목이 잠겨 소리가 잘 나오질 않는다!"하고 하시면서도 강의를 끝까지 멈추지

않으시고 힘겨운 강의를 계속 이어하시는데, 그 강의 내용의 경중을 떠나,

당시 듣고 있던 우리야말로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마음을 더욱 가다듬어야 했다. 돌아보면

선생은 감기로 목이 잠겨,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으셔도 멈추지 않으시고, 우리들에게 하나라도

더 일깨우자 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어쩌면 선생으로서는 당시 교단에서 우리들에게

직접 강독하실 수 있는 기회가 선생 스스로 판단하기 건강상의 문제로 올해, 바로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생각을 갖고 계셨다고 미루어 생각하게 된다.


당시 나로서도 교직에 몸담고 있었지만 만일 그와 같이 목이 잠겨왔다면 아마도,

"얘들아! 선생님이 지금 목이 많이 아프거든, 잠시 너희들끼리 자습해라!"

그렇게 하고도 남았을 자신을 가만히 돌아보게 된다.


'선생님,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부디 몸 조심하셔서,

우리가 더 오래 들을 수 있어야 늦게라도 저희가 깨우치겠지요.'


가을이 깊어지는 어느 해, 강원도 인제 내린천 산방(山房)에서 선생의 특별강좌가 열렸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리지 않았고, 무엇보다 요즘처럼 내비게이션이

없었다. 주말인 그날따라 출발이 늦었고, 멀고 먼 강원도 산길에 접어들었을 때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인적도 드문 산길을 물어 물어 겨우 찾아갈 수 있었다.


징검다리가 있는 개울도 건너고 그래도 무사히 산방까지 잘 도착하였다. 우리는 짐을 내려

놓을 사이도 없이 저녁 식사가 준비된 주방으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먼저 오신 분들은 이미 식사가 끝난 뒤였고 삼삼오오 모여 차를 마시거나 주변을 산책하며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늦은 우리 둘이서만 차려준 저녁밥상 앞에 앉았다. 상 위에는 여러 가지 귀한 산나물이며

구수한 된장국 등, 어머니 밥상처럼 정성스럽게 차려져 있었다. 막, 우리가 수저를 들었을

때였다. 선생님이 일부러 우리 곁으로 찾아오셔서 바로 가까이에 앉으시는 것이었다.

아마도 우리가 늦게 도착한 데다 아무래도 이곳이 낯설고 서먹한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덜어주시고자 일부러 우리 곁에 앉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오는 길에 고생은 안 했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지금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선생의 상대방에 대한 사려 깊은 배려, 그 마음씀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선생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강의실에서야 아무래도 조금은 어렵고 나로서는 항상 뒷자리만 앉아 있던 탓에 선생님을

그저 멀리서만 뵙다가 이렇게 한방에서 가까이 뵈니 또 다른 친근감이 느껴졌다.


저녁 식사를 잘 마치고 8시쯤, 노자(老子)를 주제로 강의가 시작되었다.

우선은 모든 것을 인위적으로 하려 들지 말고,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 항상 다툼(爭)을 피하고,

모든 것에 이로움을 주는 물(水)처럼 위에서 아래로 흘러 가장 낮은 곳에서 만물을 이롭게

하라는 말씀이 밤이 늦도록 이어졌다. 그렇게 뜻깊은 가을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관계 맺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