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늦은 8시 15분~!
저녁 무렵 어쩌다 우연찮게 벽에 걸린 시계를 보게 되었다.
올려다본 시계는 늦은 8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목요일, 지금 저녁 8시, 당시 이 시간이면 '우이 선생'의 청강생으로
온수역 가까운 성공회 대학교를 서둘러 가고 있을 바로 그 시간이었다.
그 강좌는 본래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한 인문학 강좌였으나 저녁 늦은 그 시간만큼은
청강생들도 자율적으로 수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선생은 특별히 배려를 한 것으로 안다.
당시 학교 수업을 마치고 일단 퇴근하여 간단히 식사를 하고 특별한 약속이나 사정이
없는 한, 그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학교로 향했다.
강의 시간은 바로 매주 목요일이었고, 특히 강의 시작 시간은 늦은 '정각 8시'가 아니고,
정확히 '8시 15분'에 강의가 시작되었다.
처음 생각하기로 아마도 '8.15 광복절'과 연관 지어 8시 15분인가 하는 생각을 했으나,
특별히 선생께서 강의 시작 시간을 그렇게 정하신 까닭은 선생이 길고 긴 '20년 20일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가석방으로 풀려 나오신 그날이 바로 8월 15일인 까닭에
선생님께는 너무나 특별한 그날을 나름 잊지 않게 위해 늦은 밤, '8시 15분'에 수업을
시작하신 것이라는 어느 선배의 이야기를 들어서 그 연유를 알게 되었다.
그러한 까닭에 처음 시작부터 선생의 강의를 정신 바짝 차리고 잘 들어야 할 것이나,
성경 말씀에도 있듯,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따르지 못한다'는 말씀대로 솔직히
늦은 시간인지라 어느 때는 졸기도 하였다.
지금은 돌이켜 생각하면 이제는 마주하고 들을래야 들을 수도 없고 돌아보면 그저
안타깝고 선생께 그저 송구스럽기만 하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 어느 날, 늦은 저녁 시간 선생은 강의를 하시던 중, 잠시 고개를
돌려 잔기침을 하시는 것이었다.
선생은 "목이 잠겨 소리가 잘 나오질 않는다!"라고 말씀하시면서도 하시던 강의를
끝내 멈추지 않으시고 힘겨운 강의를 이어하시는데, 그 강의 내용의 경중을 떠나,
당시 듣고 있던 우리야말로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가다듬어야 했다. 돌아보면 선생님은
그토록 애쓰시며 우리들을 일깨우고자 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당시 교직에 몸담고 있었지만 그와 같이 만일 내 목이 잠겨왔다면 아마도,
"얘들아! 선생님이 지금 목이 많이 아프거든, 잠시 너희들끼리 자습해라!"
그런 나 자신을 가만히 돌아보며,
'선생님, 부디 몸 조심하셔서
우리가 더 오래 들을 수 있어야
저희가 늦게라도 깨우치지요.'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언젠가 강원도 인제 내린천 산방(山房)에서 선생의 특별강좌가 열렸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고속도로 개통이 안 되었을뿐더러 무엇보다 요즘처럼 내비게이션조차
없는 때였다. 그날따라 부득이 출발이 늦었고, 멀고 먼 그곳 강원도 인제 산방까지
도착하기 전에 날은 이미 어두워진 인적도 드문 산길을 물어 물어 겨우 찾아갈 수 있었다.
우리는 짐을 내려놓을 사이도 없이 저녁 식사가 준비된 주방으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먼저 오신 분들은 이미 식사가 끝난 뒤였고, 삼삼오오 모여 차를 마시거나 주변을 산책하며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늦게 도착한 우리 둘이서만 저녁밥상 앞에 앉았다. 우리를 위해 준비된 상 위에는 여러 가지
산나물이며 구수한 된장국으로 정성스럽게 차려주었다. 우리가 막 수저를 들었을 때,
선생님이 일부러 우리들 곁으로 찾아오셔 바로 가까이에 앉으셨다.
아마도 우리가 늦게 도착한 데다 아무래도 이곳이 낯설고 서먹한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선생님의 사려 깊은 배려, 상대방에 대한 따듯한 마음씀이라 여겨졌다.
강의실에서야 아무래도 조금은 어렵고 나로서는 항상 뒷자리만 앉아 있던 탓에 선생님을
그저 멀리서만 뵙다가 이렇게 한방에서 가까이 뵈니 또 다른 친근감이 느껴졌다.
저녁 식사를 잘 마치고 8시쯤, 노자(老子)를 주제로 강의가 시작되었다.
우선은 모든 것을 억지로 하려 들지 말고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 항상 다툼, (爭)을 피하라는
모든 것에 이로움을 주는 물(水)처럼 위에서 아래로 흘러 가장 낮은 곳에서 만물을 이롭게
하라는 말씀이 밤이 늦도록 이어졌다. 그렇게 뜻깊은 가을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