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하면 일선 국군장병, 휴전선, 비무장지대, 군 적접 지역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그대로 실감 나는
곳이다.
열차를 타고 동두천을 지나 전곡 쪽으로 가다 보면 한탄강을 막 건너기 전 초성리 마을 앞,
길가에 ‘38선(三八線)’하고 화강암에 검은 글씨로 큼직하게 새겨 놓은 안내 표지석이 있다. 그곳을
지나면 전곡이 나오고 전곡역에서 버스를 타고 서북쪽 방면으로 가다 보면 화진, 왕산, 진상리에 이어
군남 면소재지까지 이어진다.
월요일 운동장에서 애국조회 시간, 교장 선생님이 한창 훈화하고 계실 때, 아침 하늘, 연습용
대포알이 하얀 구름 사이를 가로질러 지나가는 소리가 ‘슉- 슉- 슉’ 하고 나곤 했다.
그리고 뒤이어 멀리 붉은 민둥산 탄착 지점에 떨어지면 ‘쿠-웅’ 하는 폭발 소리가 들렸다.
실제로 처음 그곳에 갔을 때, 잘 아는 선배는 전방 가까이 발령받은 것에 대해 몹시 안 된 일로
여겼다. 그런데도 거기서 만난 어린 친구, 제자들이 어른이 되어 지금도 잊지 않고 연락이 오곤 한다.
내가 잘 가르쳐서라기보다 참 마음 따뜻하고 정이 많았던 친구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 가까이 임진강이 흐르고 있었고 가끔 물안개 피어오르는 강변에 나가 산책했던 그런 곳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곳에서 만난 또 다른 친구(?) 동시 <분교 마을의 봄>을 쓴 시인 ‘윤한로’가 바로 그다.
그는 근무하던 학교 교장 선생님의 막내아들이었다. 당시 모대학교 문예 창작과에 재학 중이었고,
남이 보기엔 그저 빈둥거리는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으나 사실은 휴교령이 내려 할 수 없이
내려와 있었다.
그는 대학 노트에 빼곡히 시詩 습작을 하곤 했는데 어느 해 연말,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된 것이다. 마치 하늘에서 별을 따오기라도 한 것 같았다. 하여간 그 동시가 당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 한 편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내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 동시는 그대로 외우고
있다가 해마다 봄이 되면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곤 했다.
분교 마을은 아무래도 북쪽이 가까운 터라 봄은 남쪽보다 훨씬 더디 왔다. 그곳에서 지내며
아직도 추운 겨울이라고 여기다 서울에 내려와 전철을 타면 두꺼운 외투를 입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물론 따뜻한 봄이 남쪽보다 더디 오기는 하지만 그렇게 한 번 찾아온 봄은 아늑한 분교 마을에 참 오래
머물곤 했다. 동시에서는 언니로 표현했지만 산 너머 남쪽으로 시집간 누나가 아닐까. 아무래도 따뜻한
남쪽 어딘가로 시집간 누나가 추운 곳에 있을 동생을 생각하고 따뜻한 봄바람을 몽근 떡가루를 내는
‘가는 체’로 보내준다고 하지 않았을까.
시인은 어릴 적 부친이 벽지의 선생님이셨으니 발령이 나는 대로 자연 이곳저곳 사택을 옮겨 가며 자랐을
것이다. 여기 동시를 소개해 본다.
<분교 마을의 봄>
윤한노
우리 분교 마을엔 산 너머 너머 언니가
가는 체로 쳐 보낸
고운 바람
사택 울타리엔
노란 봄
먼 산엔
붉은 봄
하늘엔
뻐꾹 봄
손등엔
쓰린 봄
내 마음엔
산 너머 너머 언니가
튼 손 씻어 주던
아직도 작년 봄
<분교 마을의 봄> 전문
어릴 적 봄이 올 때면 누나가 꽃밭에서 손가락으로 헤집어 보여주던 자주색 뾰족한 작약 순을, 봄 하늘에 울려 퍼지는 종달새 소리를, 그리고 진달래꽃 향기를, 손끝에 만져지는 꽃잎의 그 부드러운 촉감을, 진달래 꽃잎의 살짝 달콤함도 맛보던 그때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