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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Oct 23. 2020

태항산에서

풍경이 폭포의 물줄기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어떤 사람이 당신은 왜 그렇게 중국을 자주 가느냐고 한다. 그때 나는 중국에 가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함께 볼 수 있기 때문에 자주 간다고 한다. 청주 공항을 이용한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지방 사람들과 등산하는 것 자체가 친밀감을 더한다. 공항으로 이동하는 시간과 경비를 줄여주니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오늘도 낯선 사람들과 마음을 열고 태항산에 오른다. 함께 산에 오르는 일행들이 같은 고향 사람들이라서 친밀감이 더하고 마음이 편하다. 마주하는 여정마다 속마음을 내보인다. 이곳 사람들은 원시의 자연을 그대로 닮아 맑고 꾸밈이 없다. 그들의 소박한 삶 속에서 담백한 산채 요리가 더 많은 향을 품었다. 낯 모를 여행지에서 감춰진 사연과 그 시대의 행복을 본다. 아낙네들이 모여 앉아 그들만의 말로 사연을 나누는 모습을 보며, 낯선 풍경에 취한다. 


중국 산서성의 태항산 협곡은 길이가 무려 800Km에 이르는 거대한 산군이다. 너무나 커서 어디까지가 산인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그래서 중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라 부른다. 사람이 오를 수 있는 산에는 어디든지 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주민들이 산기슭에서 정상까지 돌을 쌓아 무더기무더기 작은 계단을 만들고, 경사진 산비탈에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여 한 그루씩 심어 놓았다. 멀리서 보면 작은 돌담이 희미하게 보인다.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시작한 등산길은 도화곡의 황룡담이다. 짙은 물색이 아주 인상적이다. 험준한 계곡 옆으로 길을 낸 특이한 잔도를 지난다. 흐르는 물색이 아주 신비롭다. 백룡담의 하얀 물줄기와 도화곡 절벽의 층층 주름들, 발길을 돌릴 때마다 펼쳐지는 멋진 계곡이 우리를 기다린다.


하늘길인 환산선 태항천로로 향한다. 아찔한 협곡 위의 낭떠러지를 전동차가 달린다. 신나는 우리 대중가요를 틀어 놓고 경적을 울리며 달린다. 전망대마다 정차를 하면 내려서 비경에 감탄한다. 하도 경적을 ‘빵빵’하고 울려 댄다고 ‘빵차’라고도 한단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조금 있는 편이다. 전동차가 씽씽 달리는 것도, 천 길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는 것도 신나지만은 않다. 두려움이 생겨 일행 중 젊은 여자에게 물었다.

“전동차가 이렇게 빨리 달리면 무섭지 않아요?”

“아니요, 재미있잖아요.”

세대 차이가 난다. 우리만 두려움을 느끼는 모양이다.


도화곡에서 왕상암으로 이어지는 절벽길이다. 환산선은 그 길이가 25Km에 이른다. 버스를 타고 절벽 위로 난 아슬아슬한 도로를 따라 이동하며 덜컹거릴 때마다 짜릿한 스릴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태항산 위로 난 길이라 해서 태항천로라 부른다. 도중에 내려 주위를 둘러보면 거대한 협곡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천계산에서 운봉화랑코스로 이동한다. 입구에서 전동차를 타고 이동하며 전망대에서 대협곡의 묘미를 느낀다. 태항천로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계단식 밭과 구불구불한 길과 아찔한 절벽 위에 세워진 집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태항산 대협곡의 뿌연 하늘이 아쉬움으로 남고, 운해가 없다는 것이 서운하다. 집 바로 뒤에 좁은 밭이 있고 그 옆은 천 길 낭떠러지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정말 강심장이다. 세상의 변화에 한 발 비켜 있다. 그곳에 사는 아주머니가 손자를 안고 나와 우리를 친절하게 맞이한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반가운 인사는 주고받는다.

환산선에서 가장 유명한 ‘유리잔도’를 만났다. 아찔한 절벽에 유리 바닥 밑으로 절경이 보인다. ‘유리잔도’ 위에 서서 아래를 보면 까마득한 절벽이 아른거린다. 잔도 곳곳에 한글로 된 경고판과 안내판이 있다. 한참 동안 등산로를 따라 걷다 보면 절벽을 파서 낮게 길을 낸 통로를 만난다. 그곳을 지나려면 머리를 조심하며 오리걸음으로 걸어야 한다. 드디어 왕상암의 명물인 나사형 계단이 기다린다. 위에서 밑을 보니 도저히 내려갈 수 없을 것 같다. 숨을 죽이며 기둥만 보고 만지면서 조금 내려오다 쉬고, 몇 걸음 내려오다 옆을 보며 쉬고, 그렇게 한 계단씩 매달리듯 내려온다. 두려움을 참고 한 계단씩 끝없이 내려와도 땅에 닿지 않는다. 이놈의 계단이 326개란다. 오랜 시간 마음 졸이며 지겨운 널빤지 계단을 내려와 부근 가게에서 시원한 수박을 먹고 하산한다. 하산하는 길가에 또 가게가 있다. 나이가 같아 보이는 5살 정도의 아이 3명이 한 집에 사는 모양이다. 일행이 예쁘다며 모두 안고 사진을 찍는다. 아이들이 잘 따라준다. 어디를 가나 아기들은 귀엽다. 

면산에 올랐다. 처음 맞이하는 곳은 대라궁이다. 대라궁은 높이가 10층 높이쯤 된다. 반은 엘리베이터, 반은 도보로 이동한다. 이어서 면산의 대표적인 동굴 사원 운봉사를 찾았다. 경사가 매우 심한 120여 개 계단이다. 운봉사 잔도에서 뒤를 돌아보니 아찔하다. 아름다운 풍광은 우리 곁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오래오래 가슴 벅차도록 간직하고 싶다. 일정 내내 아찔한 장면만 연출하다 끝이 났다. 살면서 때로는 이렇게 긴장을 주는 시간이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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